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장기 계류 중이던 간호법이 본회의로 직행하게 돼 의사와 간호사 직역 간 갈등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9일 전체회의를 열고 법사위에 장기 계류 중인 간호법 제정안, 의사면허 취소법 등 법안 7건에 대해 본회의 부의 표결을 진행했다. 7개 법안 모두 상임위 재적위원 24명 중 16명 이상이 찬성하며 국회 본회의로 직행했다.
간호법은 의료법에 포함된 간호사에 대한 규정을 별도로 명시하는 법이다. 간호사 업무 범위에 대한 정의와 적정 노동시간 확보, 처우 개선을 요구할 권리 등이 담겨 있다.
21대 국회에선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 국민의힘 서정숙, 최연숙 의원이 각각 발의했다. 간호사가 단독 개원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도록 업무 범위가 정해져 있다는 비판에 따라 법안소위 심의 과정에서 민감한 내용이 삭제됐다. 법사위로 넘어간 최종안에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규정됐다.
간호법 제정은 1970년대부터 대한간호협회가 줄곧 바라던 숙원 사업 중 하나다. 2013년부터 대한간호협회는 ‘간호법 제정을 위한 100만 대국민 서명운동’, ‘간호정책 선포식’ 등으로 간호법 제정의 필요성을 홍보해왔다. 2021년 11월부터는 매주 수요일 국회 앞 등에서 간호법 제정 촉구 집회를 개최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를 비롯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지난해 10월부터 간호법 철회 촉구를 위한 1인 시위 등으로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직역 간 업무영역의 경계가 무너진다면 의료현장이 엄청난 혼란과 무질서함으로 인해 의료체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간호법 제정을 반대했다. 또한 기존 의료법과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의 개정으로 충분히 간호사의 처우가 개선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의협은 9일 성명을 통해 “간호법 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으로 지정해 본회의에 직회부할 것을 의결한 것을 규탄한다”며 “의협은 그간 특정 직역 이익만 추구하는 간호법은 의료법 체계 하에서 상호 유기적으로 기능해온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뿌리부터 붕괴시켜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중대한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심각한 문제점을 지속 지적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이라도 보건의료인 간 업무 범위 상충에 따른 반목과 갈등에 따른 혼란 등의 문제로 잘 운영돼 오던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가 붕괴될 것이 너무나도 자명한 만큼, 간호법안을 즉시 철회하고 보건의료인 상생법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는 간호법의 본회의 부의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간협은 “그동안 법사위는 복지위를 통과한 다수 법안을 이유없이 발목잡고 있었다”며 “초고령사회에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간호 수요와 코로나19 팬데믹 등 주기적 공중보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간호인력의 확보와 적정 배치, 지속 근무 등을 위한 간호법은 필요하다.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날을 학수고대하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밝혔다.
의협은 본회의 통과 전까지 최선을 다해 막아보겠다는 입장이다. 의협 관계자는 “간협을 제외한 다양한 보건의료단체에서 해당 법을 반대하고 있다. 민생 법안도 아닌데 밀어붙인 것에 대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의료법이 보건의료체계를 다 규정하고 있는데, 간호법을 따로 만들면, 의사 외에 다른 직역도 각자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보겠다. 국민 상식에 부합되는 결정이 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간호법은 빠르면 24일 열릴 예정인 국회 본회의 전체회의에서 발의안에 대한 표결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