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물가 안정 기조가 확고히 간다면 모든 정책 기조를 경기 대응 쪽으로 턴(전환) 해야 한다”고 했다. 10일 편집인협회 월례포럼에서 나온 경제 수장의 발언이다. 경제정책의 중심이 경기 부양 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현실을 체감케 한다.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보면 기재부가 1.6%, 한국은행이 1.7%를 예상하는 등 주요 전망기관들이 1%대 중후반을 예상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잠재성장률은 2% 전후로 추정된다.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성장 전망치는 산업계 활력 저하, 취업률 악화, 경제 체력 부실화 등을 예고하는 불길한 지표다. 이런 국면에서 경제 당국이 경제 살리기 처방을 강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추 부총리 발언에 담긴 정부 차원의 경기 대응 의지는 결코 수사에 그쳐서는 안 되는 측면이 있다.
걱정거리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경기 부양은 유동성 확대를 부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설혹 정교한 정책 조합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한다 하더라도 정부가 경기 부양에 나서는 순간 유동성은 대폭 확대되기 마련이다. 인플레이션의 뇌관을 다시 두들기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정치권은 이미 한술 더 뜨고 있다. 난방비 문제 등을 빌미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논란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국가적 질환인 인플레를 잡으려면 긴축 기조가 불가피한데도 수십조 원을 더 뿌리지 못해 안달하는 것이다. 내년 총선의 유불리를 우선적으로 의식하는 정치권이 앞으로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경제 당국이 앞장서 방향과 속도를 잘 조율하지 않으면 정책 기조 전환이 외려 재앙을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추 부총리는 이날 포럼에서 “아직은 물가 안정 기조를 흐트러뜨려선 안 된다”고도 했다. 이 발언에 보태고 뺄 것이 없다. 인플레이션 대응 기조까지 무너뜨리면서 경기 부양에 치중하면 되로 주고 말로 받는 형국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2%를 기록하는 등 고물가 상황이 여전하다. 난방비·교통비 등 공공요금 인상 요인도 산적해 있다. 고물가 문제를 놓고 방심할 계제가 아닌 것이다. 좌우를 살피고 선후를 따지면서 갈 길을 찾아야 한다.
경제 당국은 10일 발언이 한국은행과 금융통화위원회에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만에 하나, 그런 우려가 현실화하면 인플레 위험지수가 낮아지기는커녕 자칫 자본유출이란 쓰나미까지 겪게 될 수도 있다. 경기 대응이 아무리 절실한 국가적 과제라 하더라도 거품 키우는 극약처방은 금물이란 점을 명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