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통신] 중국발 정찰 풍선이 부른 나비효과

입력 2023-02-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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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완섭 재미언론인

중국발 정찰 풍선으로 미·중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극단으로 치닫는 양국 간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미 공군기와 미사일에 의해 폭파되는 풍선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지워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텍사스주가 중국을 겨냥해 보이지 않는 풍선을 하나 띄웠다.

주 의회가 중국 기업의 미국 부동산 취득을 규제하는 법안을 들고나온 것이다. 한 중국 억만장자가 풍력발전용 부지로 13만 에이커(약 1억5600만 평)의 부지를 사들인 게 계기가 됐다. 부지 일부가 공군기지와 인접해 있는 점이 매입 동기에 의심을 불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정찰 풍선까지 띄우는 중국이 사들인 땅에서 스파이 활동을 하지 말라는 보장이 있느냐는 경계심으로 급발전했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 기업들의 토지 취득을 곱지 않게 보던 차에 유사시 식량 안보에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는 농지, 게다가 군기지에 인접한 땅을 사들인다는 사실이 보수 텃밭인 텍사스주로선 묵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텍사스, 中기업 부동산 취득 규제법안

풍선 때문에 반중 감정이 극에 달한 미국인들에게 텍사스주의 규제 소식은 뜨거운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9·11 직후 불타올랐던 극단적 애국심을 연상케 한다. 그렉 애보트 주지사는 법안이 통과되면 “당장 사인할 것”이라고 트윗을 날렸다. 이건 비단 텍사스뿐 아니라 전국적인 정치 이슈가 될 것이라며 법안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즉각 애보트 주지사를 엄호하고 나섰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우리 영토를 적국이 소유하는 걸 원치 않는다”며 ‘적국’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법안에 대해 원색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도 시정연설을 통해 “위험한 외국기업이 농지를 구입하는 걸 막아 달라”고 의회에 촉구했다.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아닌 중국인의 미국 부동산 취득 건수는 줄잡아 2만~4만 건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문제는 농지다. 지난해 현재 중국인이 취득한 미국 농지는 약 19만 에이커(2억2800만 평)나 된다.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는 총 농지면적 3200만 에이커(420억 평)에 비하면 아직은 그 비중이 크지 않지만, 중국 기업들이 농지를 마구 사들이는 게 의구심을 부른 것이다.

반중 분위기는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11개 주가 외국인의 농지 취득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캘리포니아주는 민주당이 앞장서 농지매입 요건을 통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노스다코타주에서는 중국 기업이 공군기지와 가까운 옥수수 농장을 사들이자 공군이 “심각한 위협”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미국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작용했음 직하다. 1980년대 일본 미쓰비시에 미국의 심장이라고 할 뉴욕 맨해튼 록펠러 센터를 넘겨줌으로써 ‘제2의 진주만 기습’에 견주는 충격을 경험했고, 2014년에는 맨해튼 최고급 호텔 월도프아스토리아를 중국 안방보험사에 내준 쓰린 기억이 있다. 2년 뒤에는 중국투자공사(CIC)가 록펠러 센터의 지분 45%를 사들여 미국인들의 자존심에 또 한 번의 상처를 냈다.

▲중국 정찰 풍선이 4일(현지시간) 미국 전투기에 격추당한 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서프사이드 비치 바다로 떨어지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정찰 풍선이 4일(현지시간) 미국 전투기에 격추당한 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서프사이드 비치 바다로 떨어지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로이터연합뉴스

묻지마 사재기 묵인, 禍 자초한 측면도

미국이 화를 자초한 측면도 있다. 20년 넘게 비자금 도피처나 다름없을 정도로 중국인들이 묻지마 부동산 사재기를 했지만, 미국은 이를 묵인해왔다. 1차는 1997년 홍콩반환 이후, 2차는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인들이 현금 보따리를 들고 와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부동산을 마구 사들였다. 최근 캘리포니아주 부동산 3건 중 1건은 중국인이 구입했다. 꺼져가던 미국 부동산 시장을 되살린 것도 중국인들이었다. 부패한 관리들의 비자금이나 졸부들의 돈세탁이 주목적이었지만 부동산 브로커들은 모르는 척했다.

규제에 반대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국적을 이유로 부동산 취득을 금지하는 건 다양한 인종과 문화, 차별 없는 사회 구현이라는 미국의 핵심 가치에 어긋날 뿐 아니라 관련 법규에도 위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외국인, 특히 중국이나 러시아, 북한, 이란 같은 적대국이 미국 부동산을 취득하는 건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미국인이나 기업들은 중국 내 부동산을 살 수 없는데, 왜 미국만 이들에게 땅을 팔아야 하느냐며 상호주의 원칙에도 위반된다는 주장도 있다. 더욱이 최근 중국이 남미나 아프리카 등에서 토지를 사들임으로써 신식민지화를 꾀하고 있다며 미국에서까지 이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규제 옹호론자들은 외국인들의 토지 취득을 규제하는 건 ‘인종차별’이 아니라 주권과 영토를 지키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부동산 규제를 텍사스주만 할 게 아니라 전국으로 확대해야 하고 규제 대상을 중국과 러시아 등 적대국으로 한정할 게 아니라 모든 외국인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중국발 풍선이 나비효과를 일으키며 예기치 않은 파장을 몰고 오고 있다.

wanseob.k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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