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한국인의 명품 소비 세계 1등이 왜 부끄러운가

입력 2023-02-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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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요즘 뜬금없이 한국인의 유별난 명품 사랑이 외신의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얼마 전 블룸버그는 한국이 명품 소비 1위 국가로 올랐다는 모건스탠리의 보고서를 기사로 크게 다루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소비자가 명품 옷과 가방을 구매한 금액이 168억 달러(약 21조 원)로 전년 대비 24% 늘었다고 한다.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는 325달러로 미국(280달러)과 중국(55달러)을 크게 앞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외신들은 한국의 명품 소비 열풍 원인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 물질지향적 문화, 소셜미디어를 통한 과시욕과 모방심리 등을 거론했다. 블룸버그는 한국에서 명품 소비가 급상승한 주된 이유로 주택 가격을 꼽았다. 지난 몇 년 동안 폭등한 부동산 가격 때문에 주택 소유자의 순자산이 큰 폭으로 증가했고, 그 덕분에 명품을 비롯한 사치재 소비가 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택 가격 상승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2021년도 한국 가계의 순자산은 전년 대비 11% 증가했는데 명품 소비는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그래서 블룸버그는 집값이 너무 올라 이를 살 수 없는 무주택자들도 주택을 포기하고 명품 구매에 가세해 열풍을 부채질했다고 덧붙였다.

집값이 올라 부유층뿐 아니라 서민층도 명품 구매에 열광한다는 블룸버그의 기사를 받아 국내 언론들은 고가 수입 명품을 구매하는 사치성 소비 풍조를 비판하는 논조의 기사를 냈다. 대부분은 명품 소비와 행복도를 비교하며 우리나라가 명품 소비는 세계 1위이지만, 행복은 꼴찌 수준이라는 내용을 강조하였다. 요점은 명품 소비가 행복과 비례하지 않으며, 우리나라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으나 정신적으로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교와 해석은 ‘견강부회’에 속한다. 명품 소비와 행복도가 비례하는지를 알려면 명품 구매자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조사해 비구매자와 비교해야 한다. 1인당 명품 소비가 높다고 전 국민이 다 명품을 사는 것은 아니다.

또한, 행복이 명품 소비만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명품 소비가 물질적 풍요를 반영하지도 않는다. 행복은 수많은 요인에 의해 결정되며, 물질적 풍요를 측정하는 지표도 여럿이다. 명품 소비만 꼭 집어서 행복과 풍요를 논하는 것은 부분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일반화의 오류’이다.

명품 소비와 행복의 역비례 관계를 인정한다 쳐도 반대의 해석이 가능하다. 명품 소비를 많이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명품 소비를 많이 한다는 논리이다. 행복도가 낮으면 명품 소비로 보상받으려는 성향이 높아질 수 있다. 역시 ‘인과관계 역전의 오류’이다.

이런 오류를 외국에 적용해 살펴보자. 가령, 미국의 경우 마약 소비와 총기 사고율이 높은데 이를 명품 소비와 연결해 해석하면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미국은 명품 소비가 적어 마약을 많이 하고 총기 사고가 빈번하다고 주장하면 타당한가. 하긴 미국에서 명품을 갖고 길거리를 다니면 강도당하기 십상이다. 우리나라는 마약과 총기 청정국이라 명품으로 휘감고 다녀도 안전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명품을 많이 소비하는 이유로 치안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을 꼽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무엇을 해도 세계 1등을 열망한다. 비록 명품 소비이지만 그토록 원하는 세계 1등의 위상을 성취했는데 왜 그리 깎아내리려 할까. 몇십 년 전만 해도 먹을 것도 없던 동방의 분단국가가 부자나라들을 제치고 사치품 소비 1위가 될 만큼 부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왜 자랑스럽지 않을까.

그건 우리의 인식에 명품 소비를 사치와 허영으로 간주하는 도덕적 관념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근검절약하던 시대에 유행하던 ‘저축은 미덕, 소비는 악덕’이라는 가치관도 남아 있다.

여기에 부동산 투기와 명품 소비 열풍을 사회 병리 현상으로 치부하는 시각도 작용한다. 영혼을 끌어모아 부동산에 투자하고 며칠씩 매장에 줄 서서 명품 구매에 목을 매는 행동은 당연히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부동산 투기로 번 불로소득을 사치품 구매에 쏟아붓는 호구 같은 모습이 외국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는 것이 치부를 드러내는 것처럼 창피할 수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의 명품 구매 행태가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외국과 다른 우리 국민의 명품 소비를 옳다 그르다고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의 구매행동은 다 합리적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이해할 수 없어도 소비자 자신은 나름대로 정당한 목적과 이성적 동기를 갖고 구매한다. 소중한 돈을 허투루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픈런’ 하며 명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물어보라. 명품을 사야만 하는 이유를 수십 가지나 댈 것이다. 그러니 불법이 아니면 소비행위를 규범적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소비자는 소비자일 뿐이며, 명품 구매 열풍은 한국적 소비문화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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