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찬의 세금과 사회] 대전환기의 조세정책

입력 2023-02-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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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교수, 포용재정포럼 회장

우리가 어떤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지 잘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능하는 민주적 시스템에서는 개인들의 이러한 자각이 정부에 시대 상황에 부합하는 정책을 채택하게 만든다. 우리는 시대 상황에 부합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나? 개인들의 인지능력의 탓일까? 민주적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탓일까? 거대한 전환이 필요한 이 시기에 조세정책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핵심이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조세정책이 거의 활용되지 않고 무시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발전된 나라들에서 지난 30년의 시기는 번영의 시기였다. 소득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성장은 잠시의 중단은 있어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환호가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지난 30년간 규제 완화와 사회복지 축소를 통한 성장의 추구와 같은 네오리버럴 정책이 세계를 지배했고 이러한 정책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계층 간극을 넓히고 사회불안을 초래했다. 사람들은 평생 일하고, 소비했고, 그리고 지구는 계속적으로 파괴되어 갔다. 왜 이렇게 디자인된 체계를 계속 유지시켜야 하나. 팬데믹이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홈오피스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짧은 근로시간을 선호하게 되었다. 지배적인 사고였던 개인의 이윤 동기는 약해졌다. 건강과 여가, 노인요양이 사회적으로 더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새로운 시대정신이 점차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에게는 노력해도 승자의 위치에 끼게 될 것 같지 않다는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기회의 나라라고 여겨졌던 미국에서 상위 1%의 소득은 1980년 이후 3배가 되었으나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득이 줄거나 늘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현재의 경제질서는 소비지출의 지속적 확대에 대한 항구적 기대를 전제로 하나, 이는 경제학자들만의 믿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유한한 자원의 세계(특히 환경)에서 영원히 성장하는 경제가 가능할까?

성장이 없다면 기업은 일자리를 줄일 것이다. 소비도 줄고 복지 수준도 내려갈 것이다. 경제침체가 올 것이다. 선택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지구가 지금처럼 계속 더워진다면 더 많은 재화의 생산과 그에 기초한 성장은 곧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경제는 성장해야 한다는 믿음은 경제적 팩트가 아니라 오래 유지되어 오던 관성적인 사고의 산물일 수 있다.

기후변화·불평등, 조세정책의 새 화두

성장을 완전히 포기할 필요는 없다. 완만한 전환, 잘못된 성장을 바로잡으면 된다. 석유나 가스채굴 산업보다 재생에너지 산업을 선택하고, 자동차산업과 제철산업을 전기자동차, 자동차셰어링서비스, 재생자원, 디지털스타트업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국가 간의 생산력 확대 및 제조원가 절감 경쟁이 새로운 환경친화적 산업 분야를 기술적으로 선점하려는 경쟁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느 정도 발전한 지구상의 나라들은 두 가지 거대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공급망 위기, 인플레이션 등의 레벨이 아닌 두 개의 거대한 위기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이다. 생존을 위하여도 대전환에서 도피할 수 없다. 생태적이고 공정한 세상으로의 거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전환과정에서 세제개혁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난 수십 년간 거시경제정책은 통화정책이 주도했다. 필요한 재정지출과 정부투자를 억제하고 대신에 양적 완화를 통하여 민간부문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경제위기 때마다 공급되는 유동성의 규모는 차원을 갱신했다. 결과적으로 실물투자보다 부동산과 주식에 대한 투자로 자원이 쏠리고 계층 간 심각한 자산의 양극화를 야기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전환과정에서 특히 국가가 해야 하고 국가만이 할 수 있는 혁신적 역할이 있고, 이는 큰 규모의 재정지출을 수반한다. 그만큼 큰 규모의 재원 마련이 필요한 것이다. 에너지전환을 위한 프레임을 정하고 국가가 먼저 인프라에 투자해야 한다. 민간이 감당할 수 없는 전환기 비용을 지원하고 동시에 공정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교육, 주거, 일자리, 디지털화 등의 영역에서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다.

이 분야의 사회적 투자는 피할 수 없기에 미래에 국가적으로 중요한 결정은 국가부채와 세금을 어떠한 규모와 비율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세수입을 선행적 조처로 줄여놓고 재정건전성을 주장하며 지출을 줄이려고 한다. 시대착오적이며 경제사회적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다. 필요하고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투자의 내용과 규모를 확인한 후 단기적인 재정건전성이 아니라 장기적인 재정건전성을 고려하여 세금과 국가부채를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경제상황 고려한 장기 재정건전성으로

단기적인 재정건전성은 재정수지와 정부부채의 비율과 수치만을 중시한다. 장기적인 재정건전성은 경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 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정부부채의 증가를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부채를 통한 지출확대는 단기적인 경제의 활성화뿐 아니라 지출 분야와 시기가 잘 선택되는 경우 장기적인 성장률의 회복도 가능하게 해준다. 정부의 재정지출 증가로 늘어난 부채는 성장률의 회복을 통하여 재원문제를 상당 부분 스스로 해결한다(브래드포드 딜롱·래리 서머스, 2012).

세수규모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세제개혁의 구체적 내용에 기후중립적 요구와 불평등 해소에 유효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 세금을 어느 분야에서 확보하느냐가 사회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재원조달 과정에서의 부와 소득의 격차 해소도 사회발전에 중요한 관건이다. 특히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상속증여세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래 경제정책의 핵심은 조세정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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