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동성부부' 인정 안 됐지만…법원 "건보 자격 차별 안돼"

입력 2023-02-21 14:22 수정 2023-02-2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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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5년차 동성부부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 취소 처분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후 입장을 말하며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 결혼 5년차 동성부부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 취소 처분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후 입장을 말하며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동성부부가 법률적으로 사실혼 관계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동성커플에 있어 상대방에게 국민건강보험법상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첫 사례다. 1심은 "현행법 체계상 동성인 사실혼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며 소 씨 주장을 기각했지만 항소심은 피부양자 자격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행정1-3부(이승한 심준보 김종호 부장판사)는 21일 김용민 씨의 동성 배우자 소성욱 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했다.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가 원고에 대해 한 보험료 부과처분을 취소한다"며 "소송 총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고 밝혔다.

"동성커플, 사실혼 관계는 아냐"

재판부는 동성부부는 현행법상 사실혼 관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와 김용민은 서로 반려자로 맞아 함께 생활하기로 합의하고 사회적으로 이를 선언하는 의식도 치렀다"며 "상당 기간 생활공동체를 형성해 동거하면서 서로 협조와 부양책임을 지는 등 외견상 우리 사회에서 혼인 관계에 있는 자들의 공동생활과 유사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봤다. 다만 "이러한 사정만으로 두 사람 사이에 사실혼이 성립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헌법 제36조 제1항과 민법을 근거로 들었다. 헌법에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兩性)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법 역시 혼인 당사자를 성별을 구분하는 부부(夫婦)나 부(夫), 처(妻)라는 용어로 지칭하고 있다.

재판부는 "현행법령 해석론적으로 원고와 김용민 사이에 사실혼 관계가 인정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국회가 새로운 법을 입법하거나 기존 법률을 개정하지 않는다면 동성을 부부로 인정할 근거가 없다는 점을 명시한 셈이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동성혼', '동성부부' 등 단어는 물론이고 여기에 '법적 지위' 라는 표현이 붙는 것도 맞지 않는다"면서 "이번 판결에서 인정한 관계에 대한 지칭은 '동성결합', '동성결합 상대방'이 맞으며 그 외에는 인정되지 않은 틀린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 결혼 5년차 동성부부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 취소 처분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결혼 5년차 동성부부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 취소 처분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실혼 관계 인정하지 않았지만…"건강보험 피부양자 자 차별, 평등 원칙 위반"

재판부는 '동성부부'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 이유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재판부는 "건강보험은 소득이나 재산 없이 피보험자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피부양자로 인정해 수급권을 인정할 필요성이 있고 피부양자 제도의 존재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언급했다. 건강보험 피부양자를 인정하는 방식에 있어서 부양자의 법률적 관계보다 경제적 의존도를 우선 고려해야 피부양자 제도 취지에 부합한다는 판단이다.

이어 "배우자와 동성 결합 상대방이 같은지 판단할 기준을 '직장가입자와 혼인의 실질에 대응하는 밀접한 정서적·경제적 생활 공동체 관계에 있고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지하며 소득과 재산이 일정 기준 이하일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또 "이처럼 비교 기준을 정하면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결합 상대방은 성적 지향에 따라 선택한 생활공동체 상대방이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다를 뿐 본질에서 같은 집단"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동성 결합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하는 차별대우"라며 "이 사건 차별대우는 평등의 원칙을 위반하는 자의적 차별"이라고 평가했다.

동성부부 측 "동성 배우자가 인정된 선례" 강조

소 씨 부부 측 대리인인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단순 개인의 보험료 문제로 다툰 것이 아닌 가족·사랑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 배우자가 인정된 선례"라고 강조했다. 비록 재판부가 '동성부부'를 법적으로 인정하진 않았지만 동성 간 결합이 행정 배격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사례라는 의미다.

이어 "재판과정에서 1심과 달리 2심이 계속 봤던 것은 '평등의 문제'였다"며 "대리인단은 두 사람이 이성 부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과 공단의 판단이 헌법에 반함을 충실히 변호하고 입증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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