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조용한 내조는 처음부터 없었다

입력 2023-02-23 06:00 수정 2023-02-23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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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인이 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고(故) 이정화 여사 앞에는 늘 '조용한 내조'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 여사는 전형적인 현대가(家) 며느리들과 같이 평생 남편을 묵묵히 뒷바라지했다. 다른 재벌가에 비해 유난히 외부 활동을 자제하며 남편을 내조했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고 변중석 여사의 모습과 꼭 닮았다. 현대가 사람들은 이 여사가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한 몫 했다고 평가한다.

#2
2001년 은퇴를 선언하고 2005년 지상욱 전 국회의원과 결혼한 배우 심은하는 남편의 국회 입성을 적극 도왔지만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다. 각종 유세 현장에 나타났던 스타들과 달리 단 한 번도 유세 현장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낼 정도였다. 지 전 의원이 당선돼 지역구 인사를 돌 때도 동행하지 않았다.

눈치챘겠지만 조용한 내조는 이런 거다. 지금으로부터 약 1년 2개월 전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김건희 여사는 '허위 경력' 논란이 불거지자 기자회견을 열고 "부디 용서해달라"라며 직접 사과했다. 그러면서 한 약속이 있다. “제가 없어져야 남편이 남편답게 평가받을 수만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고 싶다. 이후 남편이 대통령에 되더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며 '조용한 내조'를 다짐했다.

지난해 5월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9개월 가량 지났다. 그 동안 김 여사의 행보를 돌아보자. 취임식 당일만 해도 김 여사는 공식석상에 등장했지만 윤 대통령과 한 걸음 떨어져 걷는 등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많은 이들은 "김 여사가 약속한 대로 당분간 대외활동엔 나서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당시 한 여론 조사에서도 김 여사의 적극적 공개 행보보다는 조용한 내조를 원하는 국민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6.4%가 '조용히 내조에 집중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기존 영부인처럼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야 한다'는 응답은 24.2%에 그쳤다. 그 즈음 박주선 대통령취임 준비위원장도 “저희들도 조용한 내조를 하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윤 당선인도 그런 말씀을 늘 하셨다"고 확인시켜줬다.

하지만 이도 잠시. 곧이어 현충일 추념식에도 윤 대통령 부부가 나란히 참석해 퍼스트 레이디 행보로 기조를 바꾸는 건 나니냐는 물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즈음 김 여사 팬클럽에선 대통령실 사진을 공개해 한바탕 소란도 일었다. 이후에도 봉하마을 방문 시 김 여사가 과거 운영했던 회사 코바나콘텐츠 출신 직원이 동행한 것은 물론 대통령실에 채용,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순방에 한 비서관 부인이 함께해 '비선 동행' 논란이 계속됐다. 취임 후 2달도 안돼 일어난 일들이다.

특히 최근 들어선 ‘1일 1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개 행보가 도드라졌다. 국민의힘 여성 의원, 대통령실 직원, 국무위원 배우자 등을 서울 한남동 관저에 초청하는가 하면 윤 대통령 없이 단독 행사도 진행 중이다.

이쯤 되니 '조용한 내조'가 언제였는지 잘 모르겠다. 언제 부터인가 언론들은 "조용한 행보 끝났다"는 보도를 쏟아냈지만, 필자는 처음부터 조용한 내조가 있었나 싶다.

김 여사의 적극적인 공식 행보 자체를 문제시하는 건 아니다. 다만, 20대 대선 당시 각종 의혹으로 '최대 부인 리스크'로 부각되자 김 여사 스스로 내놓은 대안이 '조용한 내조'다. 윤 대통령 역시 배우자를 보좌하는 제2부속실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두 사람의 약속을 믿었던 국민들과의 신뢰 문제라고 강조하고 싶다. 그 와중에 다수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이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특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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