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규제 공백' 사업자·투자자 피해 우려

입력 2023-02-23 05:00 수정 2023-02-2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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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사업자 36개사 중 사업자 구분은 거래·기타업 뿐
규제 공백에 투자자 보호 문제ㆍ사업 리스크 대두
“특금법 규제 공백 가상자산 기본법이 해결해야”

가상자산 업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이분법적인 사업 신고 수리 범위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수탁·운용·평가·공시 등 나날이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하는데, 사업자 신고 수리는 거래업자·기타업자 단 2개뿐이다. 이에 따른 법적 공백도 커 투자자 피해가 우려된다.

22일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3일 기준 신고 수리된 가상자산 사업자는 총 36개 사다. 이 중 27개 사가 거래소, 나머지 9개 사는 기타 지갑 보관·관리업자로 분류돼있다.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매뉴얼은 업종을 △가상자산 거래업자 △가상자산 보관관리업 △가상자산 지갑서비스업자로 구분한다.

사업자 구분은 단순하지만, 많은 업체가 예치, 운용 서비스 등을 겸하고 있다. 거래업자로 신고 수리된 지닥의 경우 ‘인덱스’라는 서비스로 ‘BTC 1호 콜롬버스’, ‘ETH 1호 콜럼버스’ 등 예치 상품을 제공 중이다.

기타업자로 신고된 델리오는 예치, 렌딩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델리오는 자사 홈페이지에 “가상자산 예치·렌딩을 전문으로 하는 유일한 가상자산사업자(VASP)”라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예치 운용업에 대한 자격을 FIU로부터 받지는 않았다.

거래업과 지갑·보관 관리업으로 치중된 사업자 구분은 투자자 보호 공백이 우려된다.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는 금융시장의 펀드와 비슷한 개념이다. 고객이 맡긴 자산으로 투자하고 약속한 수익률에 따라 수익을 돌려준다. 그러나 펀드의 경우 위험등급이나 위험지표 등을 고지하는데 비해, 가상자산 예치 상품은 수익률에 대한 안내만 이뤄지고 있다.

또 사업자 입장에서 모호한 신고 범위는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가상자산 적립식 구매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트세이빙은 최근 구매 서비스 일부를 일시 중지했다. 비트세이빙의 서비스가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신고가 필요하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비트세이빙은 현재 FIU에 신고 수리된 가상자산 사업자가 아니다.

비트세이빙 관계자는 “2021년 7월과 2022년 11월 ISMS 인증 획득을 시도했지만, ISMS 인증을 내주는 한국인터넷진흥원 측에서 가상자산사업자에 해당하는 ISMS 인증이 나오지 않는 모델이라는 답변을 줬다”라고 밝혔다.

이어 “가상자산 사업자용 ISMS를 받기 위해 가상자산을 보관하는 지갑을 관리하는 공간이 있어야한다”라면서 “비트세이빙의 경우 수탁업체에 가상자산을 맡기고 있어 ISMS 발급이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사업자 세분화, 법적 기반 필요하지만…한참 걸릴 전망

가상자산 운용 사업의 법적 기반이 명확해질 때까지 국내에서 가상자산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곳도 있다. 위메이드의 경우 델타 다오(DAO)를 통해 위믹스3.0 기반의 자산 운용 프로토콜을 준비 중이다. 위메이드 관계자는 법과 규제를 준수해 국내외 시장에서 가상자산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정보분석원(FIU)는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수리 범위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관련법도 없는 데다, 사업을 깊이 살펴볼 인력도 부족하다. FIU 관계자는 “가상자산 자체를 이용한 준금융서비스는 직접 개입해 살피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예치 운용업은 규율체계가 필요할 것 같다”면서도 “미신고 된 사업 모두를 직접 찾아 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현재 FIU 가상자산검사과 인원은 9명으로 신고 수리된 가상자산사업자 보다 적은 숫자다. 이 밖에 신고 되지 않은 사업 형태까지 찾아보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초기 특금법은 거래소나 수탁업체를 대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사업구조를 포함해서 법을 만들지 못한 것 같다”라며 “구매 서비스나 예치 서비스 등 새로운 형태의 사업들이 신고 대상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본법이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가상자산 사업자를 세분화하기 위해서는 법적 기반이 필요하지만, 관련법 제정은 한참이 걸릴 전망이다. 당장 투자자 보호를 위한 디지털자산 기본법도 논의가 한없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는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17개가 계류 중이다. 지난해 5월 테라-루나 사태 이후 투자자 보호 필요성이 커지며, 법안이 탄력을 받았지만, 그때뿐이었다. 여야 논의가 늦어지며 법안은 해를 넘겼다. 올해 1월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 소위에서도 법안이 상정됐지만, 각종 현안에 밀려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정무위는 27일 법안 소위를 여는데, 이때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다뤄질 전망이다. 다만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법안은 당장 시급한 과제로 꼽히는 투자자 보호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들은 대부분 가상자산 시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불공정 거래 규제와 소비자를 보호하는 데 치중돼 있다. 사업자 신고 수리 등 행위 규제에 관한 내용은 향후 다뤄질 계획이다. 그러나 여야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와 김건희 여사 특검 도입을 놓고 극강의 대치를 하는 상황에서 계획대로 처리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디지털자산법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국민의힘 디지털자산특위는 사업자 신고 범위 세분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법무법인 주원 정재욱 변호사는 지난달 열린 제5차 민당정 간담회에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특정 가상자산사업자가 어떠한 범위의 업무까지 FIU에 신고했는지, 수리된 범위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가상자산을 이용한 거래소·예치·수탁·운용·평가·공시업을 제도적으로 구분하여, 해당 업에 맞는 진입규제, 행위 및 규제를 별도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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