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프리즘] 전경련 쇄신의 과제

입력 2023-02-23 05:00 수정 2023-02-2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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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전경련이 쇄신을 요구받았다. 치욕적이다. 1961년 창립 이래 사회 각 분야의 쇄신을 선도해 온 전경련이었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러나 쇄신에 대한 외부의 요구는 전경련의 역할에 대한 여전한 기대의 반증일 수도 있다. 하기 나름으로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전경련의 쇄신은 무엇보다 시장경제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그 틀 속에서 성장의 동력을 확보하고 형평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 민간의 창의가 최대한 발현되고 높은 효율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의 틀 속에서만 가능하다. 전경련의 설립을 주도했던 재계의 아버지들은 국가기간산업을 세우고(이병철 회장, 1961) 세계 시장을 향해 겁없이 뛰쳐나갔다. 돈을 구하러 세계 각처를 돌아다녔고 없는 기술을 눈짐작으로 배워와 ‘메이드 인 코리아’를 수출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곳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남들은 기적이라 했지만, 사실은 자유시장경제가 정답이었다.

국가기간산업 세운 재계의 아버지들

재계의 아버지들은 짧은 성공에 안주하지도, 닥친 위험에 도피하지도 않았다. 정보산업협회, 유전공학연구조합, 한국기술투자가 잇달아 만들어졌다.(정주영 회장, 1981) 오늘날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누리는 정보통신기술(ICT), 바이오, 벤처 산업은 미래를 내다본 전경련의 포석으로 가능했다.

성공은 실패를 동반한다. 민주주의는 성장의 그늘을 방관하지 않는다. 그래야 나라가 유지, 발전된다. 질병과 가난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돈이 없어 아픈 몸을 치료받지 못하게 할 수는 없었다. 기업이 주도하는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됐고(김용완 회장, 1978) 이는 오늘날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이 됐다. 사회공헌위원회를 설치해(김우중 회장, 1999)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사랑의 열매로 유명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전경련 회관의 조그만 방에서 외환위기 직후 잉태된 것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경제 성장의 혜택을 사회가 누리게 되면서 우리는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라는 또 하나의 금자탑을 세계에 자랑할 수 있게 됐다.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의 표지석.    뉴시스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의 표지석. 뉴시스

국가의 지속발전을 위한 정치사회적 안정은 전경련 설립 이래의 큰 과제였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자금은 내더라도 제발 뺨은 맞지 않게 해달라”며 정치자금의 양성화를 주장했다(이정림 회장, 1965). 또 국가 경쟁력 강화의 큰 틀에서(최종현 회장, 1993) 대·중소기업 상생의 기반을 구축했다. 중소기업 전용 금융회사, 연수원, 싱크탱크 설립은 전경련이 있어 재계의 뜻을 모을 수 있었다. 정부도 못 해냈던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민간의 자율조정으로 해내(최종현 회장, 1994) 재계의 성숙한 자율역량을 과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조차 회의적이었던 88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한(1981) 정주영 회장은 “전경련이 아니었으면 못 해냈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일월드컵(최종현 회장), 여수엑스포(정몽구 회장), 평창올림픽(이건희 회장) 등 세계적 이벤트를 잇달아 유치해 우리 국민들의 자부심을 높였다. 미국행 비자를 받기 위해 밤샘 노숙을 해야 했던 국민들의 불편을 해소한 것은 10년에 걸쳐 추진된 한·미 비자면제협정의 체결(조석래 회장, 2008) 덕분이었다.

국정농단 그늘, 환골탈태의 기회로

그러나 전경련의 이 빛나는 순간은 국정농단사태로 모두 묻히고 말았다. 사회의 쇄신을 주도했던 전경련이 적폐로 몰려 존폐의 기로에 놓이기도 했다. 수많은 규제가 갈 길 바쁜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어도 지켜만 봐야 했다. 사실 재계의 이러한 어려움은 원칙 없는 세습경영, 눈살 사나운 경영권 분쟁, 문어발 확장, 정경유착, 협력업체 쥐어짜기 등 나쁜 습성으로 자초된 측면도 크다. 따라서 시장경제, 민주주의, 경제안보 등 전경련의 산적한 과제는 불미스런 과거와의 과감한 결별과 일대 자성을 전제로 한다. 이 전제가 없이는 어떠한 과제도 국민적 공감대의 바탕에서 추진될 수가 없다. 재계와 국민과의 소통 강화는 따라서 이 시점에서 전경련의 첫 번째이자 가장 큰 과제라고 하겠다.

과거 전경련회관의 쉴 새 없이 돌아가던 중앙회전문은 한국경제 도약의 상징(손길승 회장, 2010)이었다. 쇄신을 요구받는 전경련이 환골탈태해 다시 한번 우리 경제의 견인차로 부활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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