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매년 이맘때 접하게 되는 뉴스를 보면 의사들이 다 똑같은 것 같지는 않다. 즉 성형외과, 정형외과, 피부과, 영상의학과 등의 전공의 경쟁률은 매우 높지만,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내과, 외과, 흉부외과 등은 대부분 미달이거나 심한 경우 지원자가 아예 없다. 수도권의 몇몇 대학병원 소아과 병동은 전공의가 없어 운영이 힘들 지경이고, 국내 최고 병원 중 한 곳에서는 뇌수술을 집도할 신경외과 의사가 부족하여 근무하던 간호사가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환자들이 대학병원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만나게 되는 젊은 의사들은 대개 내과, 외과 등 필수진료 분야에 속한 이들인데, 이러한 분야의 전공의 지원자가 적어지고 적정 수준의 전문의가 배출되지 않는다면 국민건강이 위협받게 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공감하고 동의하는 문제 상황인데, 이에 대한 해법은 매우 다르다. 정부는 현재 3000명 수준인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매년 배출되는 의사 수를 늘리면 필수진료를 담당할 의사도 자연스레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또, 공공의대를 만들어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하는 대신, 일정기간 동안 구인난을 겪고 있는 지방의료원에 근무하도록 하자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반면, 의사들은 현재의 기형적인 건강보험 수가체계가 발생시킨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고 항변한다. 필수진료에 해당하는 수술과 처치에 대한 수가(건강보험공단에서 의료기관에 지불하는 단가)가 너무 낮아 적자를 보지 않으려면 전문의 한 사람이 많은 진료를 떠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전공 선택을 앞둔 청년 의사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이해해 보려 한다. 최근 전공의들이 몰리는 진료과목들은 응급환자가 많지 않아 전공의 수련과정이 상대적으로 덜 힘들다. 전문의가 되고 난 다음의 경제적 보상도 더 크다.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값비싼 비급여 의료행위가 많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 덕분에 보편화된 건강검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적지 않은 추가비용을 지급하며 받는 정밀 암진단과 뇌 MRI 촬영은 수익이 큰데 환자를 다루는 위험은 적다. 무엇보다 진료 시간을 의사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품위 있는 생활이 가능하다. 반면, 내과나 외과 등 필수진료 의사들의 삶은 정반대다. 전공의들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들을 진료하며 늘 극도의 긴장상태에 있고, 언제 응급환자가 내원하여 응급실 호출을 받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쪽잠을 잔다. 환자를 살리고 건강을 회복시키는 것에 보람을 느끼겠지만,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사명감이나 보람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똑같이 의대에 와서 다른 길을 선택한 동료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것이다.
국가는 제도를 만든다. 그리고 사람은 그 제도에 적응한다. 필수진료과목 기피현상은 현재의 건강보험제도에 의사들이 적응한 결과이다. 필수진료에 대한 수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한 이 전공을 선택한 의사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지속될 것이다. 이것은 의대 정원을 늘리거나 공공의대를 설립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제도개혁의 방향은 건강 ‘보험’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설정해야 한다.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큰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는 것처럼, 건강보험도 위중증 질환에 대한 수가를 전면적으로 검토하여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소요되는 재원은 경증 질환 및 검진 관련 건강보험 혜택을 조정하여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결국 필수진료과 의사들에게 목숨을 맡겨야 한다. 의사 중에서도 더 우수한 의사들이, 사명감에 더하여 적정한 경제적 보상을 받고 당당하게 외과나 흉부외과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교수 10명이 전공의 1명에게 자기 수술에 들어와 달라고 사정한 것을 웃고만 지나쳐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