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정순신 아들' 학폭 사태로 본 '사실적시 명예훼손'

입력 2023-03-0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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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학교폭력’ 전력으로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가 논란인 가운데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관한 논쟁도 뜨겁습니다.

형법 제307조 제1항에 규정된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다만 같은 법 310조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며 예외 사유를 정하고 있는데요.

다시 말해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거로 판단되면 처벌받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시점은 2018~2019년에 활발하게 진행됐던 ‘미투(Me too) 운동’ 때였습니다. 피해 사실을 알린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언론에 많이 보도됐는데요.

지난해 4월 MBC ‘PD 수첩’에 출연했던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법에 대해 “사법 자원의 낭비고 전과자를 양산하는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법 자체가 사실을 말한 사람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다는 취지인데요.

실제 학교 현장에서의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해자에 대한 학폭 처분이 내려져도 교사가 해당 내용을 학교에 공개해서 학생을 지도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 하는데요. 왜냐하면 가해자 부모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교사를 고소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피해자 측에서는 학폭 사실이 묻혀버리면서 사실상 2차 가해를 입는 셈입니다.

소재현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는 2일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사실을 얘기한다고 해서 무조건 명예훼손이 되진 않는다. 공연성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가령 피해자 측이 사람이 많은 단체 채팅방이나 학부모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얘기하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인정될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이 법이 지나치게 가해자 측의 명예를 보호하는 측면이 있고, 잘못에 대한 사실을 얘기했음에도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 있다 보니 가해자 측에서는 법적으로 싸울 때 이 법이 하나의 수단이자 카드가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소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무조건 악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폐지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남소의 여지도 충분하다”며 “사실을 적시한 것에 대한 명예훼손이 과연 형법적으로까지 보호할 만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있다. 실제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징역형이 나온 경우는 못 봤지만, 법상으로는 가능한 거니까 과도하게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이긴 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개인의 명예 보호 vs 표현의 자유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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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비록 가해자라고 할지라도 한 인간의 명예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존치되어야 한다는 쪽과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는 쪽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데요.

김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19년에 발표한 논문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존폐론’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가장 큰 쟁점은 헌법상의 기본권인 명예권과 표현의 자유 사이에 발생하는 기본권 간의 충돌이므로 양 기본권은 어느 한쪽이 우위에 있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그는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처벌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위 ‘허명’까지 보호하게 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앞선 언급처럼 피해자를 가해자가 맞고소하면서 가해자의 비리 혐의까지도 보호하게 되는 맹점이 있다는 것인데요.

김 부연구위원은 “허명을 포함한 명예의 보호와 진실한 사실을 표현하는 자유와의 비교 형량에 있어서도 무게중심은 표현의 자유에 놓이게 되므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협의의 비례성의 원칙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세계적으로 명예훼손죄를 비범죄화하거나 최소한 비구금형으로 하고 있음은 명예보호를 위해 형벌 이외에 다른 수단, 즉 손해배상이라는 민사적 제재가 보다 효과적임을 인정하는 것의 방증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장기적으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위 논문에 따르면, 외국의 사례로는 독일과 일본의 경우 진실한 사실이 입증되면 본죄로 처벌되지 않습니다. 미국 역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자체가 형법상 범죄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유엔은 2011년,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라고 권고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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