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가족의 탈모와 암

입력 2023-03-06 06:00 수정 2023-03-06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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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이마가 넓어지는 것 같다. 아내는 M자형 탈모 전조라는 진단(?)을 내렸다. 다행히 머리숱이 있는 편이라 그리 티가 나지 않는다고 믿고 싶다.

머리가 빠지고 탈모증세를 겪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2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탈모증상으로 진료를 받은 인원(2020년 기준)은 23만 3000명이다. 연령대별로 보면 20대가 4만 8000명, 30대가 5만 2000명, 40대가 5만 명이다. 30대가 가장 많았지만 20대도 5만 명에 육박하는 걸 보면 젊은이들의 고민이 느껴진다. 탈모 치료제 등 진료비로 30대는 약 16만 2000원, 20대는 14만 5000원 정도를 쓰고 있다고 한다.

탈모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고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탈모 환자들에게 지원금을 준다고 한다. 서울 성동구는 작년 5월 조례를 제정했고 만 39살 이하 탈모 환자에게 연간 20만 원, 치료제 구입비 일부를 달마다 지원하기로 했고 충남 보령에서도 올해부터 만 49살 이하를 대상으로 연간 200만 원을 주기로 했다.

재정적 여유가 있다면 이들이 겪는 탈모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재정적 여유가 없다면 과연 탈모에 건강보험 또는 지자체의 지원금을 주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

정부가 최근 암 등 중증·희귀질환자에 대한 산정특례제도를 손본다고 한다. 문재인 케어의 대표적인 암 등 중증·희귀질환자의 본인부담률을 5~10%로 낮게 적용해 의료비 부담을 덜어줬는데 건강보험 재정 등을 이유로 이에 대한 지원을 줄이겠단 것이다. 질환과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합병증은 특례 적용을 제외하고, 105개 경증 질환부터 제외 대상을 정한 것. 하지만 합병증 인과관계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 전 정권(문재인) 지우기의 일환 같기도 하다.

암 등 중증·희귀질환 치료는 참으로 힘든 과정이다. 항암치료로 환자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는다. 체중은 줄어 뼈만 앙상하게 남기도 하고, 머리카락·눈썹 등 온몸에 있는 털이 대부분 빠지기도 한다. 환자가 그 고통을 이겨내 증상이 호전되면 그다음으론 과중한 치료·입원비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탈모는 이에 비해선 고통이 덜할 것이다.

주요 투표층을 공략해 표를 더 얻기 위한 정치적인 이유도 담겼다고 본다. 암 환자는 물론 가족들은 치료와 병간호로 투표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 탈모 증상이 있는 유권자들은 암 환자 가족보단 투표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 만약 그렇다면 참으로 얄팍한 술수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탈모는 건강보험을 적용하려 하고 암 등 중증에 대해선 건강보험을 줄이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사안의 경중, 일의 우선순위가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이 탈모로 인해 면접 등에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 이를 치료해야 한단 의견이 있다. 그럼 앞으로 코가 낮아서 면접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눈이 작아서 면접에 자신감이 없다 등 이런 경우도 건강보험, 지자체에서 지원을 하려나란 생각도 든다.

건강보험 재정이 넉넉해 암 등 중증·희귀잘환에 대한 건강보험 삭감 없이 탈모 치료도 지원한다면 찬성하겠다. 하지만 줄어들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을 건전하게 하기 위해 중증·희귀환자 지원은 줄이고 탈모 환자 지원은 신설하는 것은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탈모 증상이 있는 환자들에게는 미안하다. 다만 우리 가족 중 암 환자와 탈모 환자 모두가 있다고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럼 어느 정도 방향이 잡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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