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숨 고르기

입력 2023-03-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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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장, 내과전문의

“헉헉”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조금만 더 오르면 정상인데 힘에 부친다. 그때 갑자기 리더가 오른손을 높이 들고 주먹을 쥔다. 잠시 쉬며 숨을 고르라는 뜻이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뒤를 돌아보니 올라온 길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가파르고 구부러진 오솔길 옆으로 기암괴석과 나무, 이름 모를 꽃들이 장관이다. 올라올 땐 앞사람 발걸음을 놓치지 않으려고 쉼 없이 걸은 탓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정상을 앞두고 잠시 멈추라고 한 이유가 있습니다.”

리더는 우리에게 자기의 모습을 돌아보라고 말했다. 다치고 상처 난 곳은 없는지, 장비와 옷은 괜찮은지, 또 풀어진 신발 끈도 꽉 조여 매라고도 당부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도 살피라며 상대방이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고쳐주고, 더 힘들어 하거나 아픈 사람은 없는지, 혹시 낙오된 사람은 없는지를 체크해주라고 했다.

“산 정상에 도착하면 등정(登頂)의 기쁨에 도취되어 미처 나와 동료들을 살필 기회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린 항상 정상에 머무를 순 없잖아요. 산은 내려와야 합니다. 하산하는 것이 더 위험하고 힘든 건 아시죠?”

우리 삶도 등산과 마찬가지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또 언젠가는 내려와야 한다는 면에서. 하지만 우린 정상에 오를 때까지 숨 고르기 한 번 한 적이 있을까?

‘갈수록 숨 가쁘게 삶은 들떠가는데 / 머리는 더 빠르게 돌아 몸은 사나워지는데

푸른 새 숨 드나들 빈 구멍 하나 없어 / 분주한 몸과 마음이 찬란하게 숨 막힌다.’

- 박노해 ‘숨 쉬는 법’ 중에서

고지가 눈앞에 있지만 남은 힘을 쏟기 전에 잠시 멈추는 시간을 갖는 숨 고르기, 우린 그 숨 고르기를 하는 동안 나 자신을 돌아보고 또 주변을 살펴야 한다. 오직 정상을 향해 내달리는 동안 상처 나고 찢긴 곳은 없는지, 초심이 흔들리거나 변한 건 아닌지, 흐트러짐은 없는지, 이곳까지 오는 동안 행여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 적은 없는지, 도움을 준 사람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 내가 올라온 길을 다시 한번 복기할 필요가 있다. 비록 좁고 구부러진 길이었지만 그 길을 통해 천천히 내려와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너무 급하지도 너무 편안하지도 않게. 발밤발밤 걸음을 옮길 때면 산은 힘들고 지친 우리에게 올라올 땐 보지 못한 풍성하고 아름다운 선물을 허락할 것이다. 비록 정상의 높이는 제각기 다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등정을 완주한 우린 모두 삶이란 산이 주는 선물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으니까.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장, 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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