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흥준의 일터에서] 정부의 노동정책에 빠진 것들

입력 2023-03-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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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음식을 할 때 반드시 넣어야 할 재료를 넣지 않으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 요즈음 노동정책이 딱 그렇다. 대한민국 정부가 노동개혁을 위해 보이지 않는 괴물과 전쟁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괴물은 바로 노동조합이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을 강경하게 진압한 정부는 건설노조를 금품을 갈취하는 폭력배에 비유하며 악습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거의 매일 밝히고 있다.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부패한 세력일 수 있다며 검사를 해봐야 하니 회계장부를 당국에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노동조합은 타협과 상생의 대상이었으나 윤석열 정부에서의 노동조합은 타협은커녕 청산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시작은 화물연대의 파업이었다. 정부가 화물연대의 연이은 파업에 원칙적으로 대응하자 다수 국민이 이를 지지하였다. 타워크레인 기사의 월례비 요구도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없어져야 할 악습으로 받아들였다. 정부가 노동조합의 회계장부 제출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국민들은 투명해서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좀 의아한 부분이 많아지고 있다. 타워크레인 기사의 월례비 요구는 잘못된 것이지만 사용자의 안전관리 위반을 눈감아 주거나 계약 이외의 추가적인 업무의 대가로 월례비를 지급하는 관행도 적지 않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노조 회계장부 요구 역시 정부에 그럴 권한이 있는지 의문이 커지는 가운데, 정작 회비를 내는 조합원들은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있으며 이렇다 할 노조 회계비리가 확인된 바도 없다.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근로시간 개편도 정부 계획을 발표했지만, 경영계만 환영 의사를 밝히고 있을 뿐 노동계와 야당은 장시간 노동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여론도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데, 이유는 64시간이든 69시간이든 추가로 더 일해야 하므로 국민 반감이 클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원래 근로시간의 변경은 근로자 대표 또는 노동조합과 협의해야 할 사안이지만 정부는 노동조합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논의한 적이 없다. 정부는 근로자가 손해 볼 것이 없기 때문이라지만 손해 볼 것이 없다면 왜 이렇게 반대하는지에 대해 돌아보아야 한다.

사회적 대화는 멈춰선 지 오래다. 현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노사정 대화는 실종되었고 대통령 소속기관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김문수 위원장의 고립된 활동공간이 되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회의가 출범했지만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가 아닌 의견그룹일 뿐이다. 사회적 대화가 실종된 주된 이유 역시 정부가 노동조합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를 하려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야 하지만 정부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기에 잠재적인 범죄집단이 될 수 있는 노동조합과 국정운영을 논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노동조합 전체를 범죄집단으로 볼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헌법은 지금도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있음을 부정해선 곤란하다.

상생임금위원회는 다를까. 임금전문가조차 참여하지 않는 상생임금위원회에 대해 전문가조차 의아해하는 것은 예외로 하더라도, 임금은 노동조합과의 논의를 통해 변경 등이 가능한데 정작 상생임금위원회에는 한국노총이든 민주노총이든 노동조합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상생임금위원회도 이전의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그랬듯이 이런저런 방안을 내놓으면 정부가 취사선택해 정책을 추진하는 기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노동조합은 그때도 반대할 것이다. 참여도 하지 않아 정부 정책에 동의하기도 어렵지만, 성과급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들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음식에 꼭 필요한 재료가 있듯이 노동정책에는 노사의 참여가 균형적으로 보장되어야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지나치게 일방적이다. 윤석열 정부가 싸우고 있는 노동조합은 대한민국의 적이 아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고 기업의 잘못된 행태를 감시하며 사회안전망 강화나 산업재해 감소와 같은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다만, 노동조합이 잘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정부가 지금처럼 노동조합을 몰아세울 수 있는 것도 그동안 노동조합이 자기혁신을 게을리했기 때문일 수 있다. 노동조합은 자신이 가진 자원으로 취약노동자를 보호하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연대하고 양보해야 했는데 그러한 노력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조합을 때려 없애려고 해서는 곤란하다. 가까운 미래에 대한민국의 진짜 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경제위기이다. 1% 저성장과 유례없는 수출 부진, 꺾일 줄 모르는 물가와 고금리는 극심한 스태그플레이션과 일자리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때 정부가 사용자만 감싸고 노동조합을 적대시해서는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가 남은 4년 내내 노동자와 싸움만 이어간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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