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낮은 곳’도 신경 쓰자

입력 2023-03-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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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는 통상 권력과 힘에 비례한다. 높을수록 권력과 힘이 세다. 영화 기생충에서는 해당 명제를 공간에 대입한다. 동익(이선균 분)의 집은 언덕 위 단독주택이고, 기택(송강호 분)의 집은 다리 밑 반지하다. 동익은 글로벌 IT기업 CEO며, 기택은 그런 그를 모시는 운전사다. 때로는 본업인 운전 이외에도 시키는 여러 잡무를 한다. 이를테면 동익 아들 생일날 인디언 분장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그런 기택보다 더 낮은 곳에 사는 사람도 있었으니, 창문 하나 없는 지하에 사는 근세(박명훈 분)다. 근세가 할 일은 그저 모두에게 눈에 띄지 않는 일이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권력과 힘이 세다는 것을 알고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실제로 정부는 높은 곳에 사는 이들이 더 높은 곳에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국토부는 최근 1기 신도시 특별법을 발표하고, 이미 꽉 채운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대폭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서울시 역시 35층 룰을 폐지하고, 곳곳에 바벨탑 쌓기에 바쁘다. 여의도에서는 시범아파트가 65층 초고층으로 재탄생한다. 구상대로라면 서울시 내 아파트 가운데 가장 높은 건축물이 된다.

반면 낮은 곳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평소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챙기는 척한다. 최근 논란이 계속된 빌라 전세사기 문제가 그렇다. 정부는 뒤늦은 대책을 내놓으면서도 원인은 이전 정부로 돌리기 바빴다.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화재사건도 마찬가지다.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리는 구룡마을은 이번처럼 재해가 있을 때마다 개발 이야기가 나오는 곳이다. 그러나 관심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또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렇게 최악의 슬럼가로 자리매김한 지도 어언 40여 년이 됐다.

사실 그 어떤 높은 건물이라도 저층이 있기 마련이다. 저층부가 탄탄해야 건물을 안정적으로 높게 올릴 수 있다. 낮은 곳을 더욱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제2, 제3의 전세 사기 및 화재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단발성이 아닌 지속가능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반지하에 살던 기택은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고 결국 더 깊은 지하로 들어간다. 이제는 그들이 안전히 올라올 수 있는 탄탄한 사다리를 만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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