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내 예금자보호한도 늘릴 때 됐다

입력 2023-03-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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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사태의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례적 조치를 취했다. 12일(현지시간) SVB 예금의 전액 인출을 보장한 것이다. 물론 도미노 파산 우려가 불식된 것은 아니다. 미 16위인 SVB에 이어 29위 규모이자 가상자산 전문은행인 뉴욕주 소재 시그니처 은행이 추가 폐쇄됐다. 위험 신호는 여전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예금자보호한도를 넘는 전액 인출 보장으로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 위험성을 낮춘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안심해도 된다”고 했다. SVB 고객만이 아니라 다른 금융사 고객들도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미국의 1인당 예금자보호한도는 25만 달러(약 3억3000만 원)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한도 준수를 고집했다간 불길이 크게 번질 수도 있다고 판단해 이례적 개입을 선택했다. 금융 안정성 보호가 절박한 과제라고 본 것이다. 대한민국 사정은 어떤지 돌아보게 된다. 국내 예금자보호한도는 5000만 원이다. 미국의 6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대한민국 금융권에서 SVB 유형의 금융사고가 불거지면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보장되는 보호의 6분의 1밖에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더욱이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달리 우리 정부가 시장 원칙을 깨면서 보호한도를 넘는 파격적 보호망을 펴는 것은 국가의 명운을 건 도박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은행 고객을 보호하고 불안지수를 줄이려면, 그리고 비상시에 국가적 도박을 벌이는 불상사를 미리 막으려면 예금자보호한도를 현실화해야 한다. 현재의 한도는 주요국과 비교해도 턱없이 적다. 각국 한도를 보면 일본은 1000만 엔, 영국은 8만5000파운드, 독일은 10만 유로, 캐나다는 10만 캐나다달러에 달한다. 예금보험공사(예보)가 지난해 10월 나온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을 근거로 추정한 작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해도 일본은 2.27배, 영국은 2.26배, 독일은 2.18배에 달하는 반면 한국은 1.17배에 그치고 있다. 3배가 넘는 미국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국내 예금자보호한도가 5000만 원으로 설정된 것은 2001년의 일이다. 근 20여 년간 변화가 없었는데 그사이 1인당 GDP는 1500만 원에서 4200만 원 수준으로 뛰었다. 보호한도 조정을 골자로 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이미 국회 입법 테이블에 올라가 있다. 금융위원회와 예보도 지난해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보호한도 등의 개선방안을 논의 중이다. 쇠뿔도 단김에 뽑는 법이다. 국내 금융소비자들이 납득할 결론이 조속히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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