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칼춤 제대로 보여줬다…서슬 퍼런 복수부터 따뜻한 연대까지 [이슈크래커]

입력 2023-03-15 15:58 수정 2023-03-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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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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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크진 못했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어느 봄에는 활짝 피어날게요

문동은(송혜교 분)이 에덴빌라 건물주 할머니(손숙 분)에게 쓴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다. 다짐한 것처럼, 문동은은 기나긴 겨울 끝에 피어난 봄꽃처럼 웃었다. 인과응보를 입증하며 자신의 영광을 되찾고 승리한 것이다.

이달 1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파트2는 파트1에서 풀어놓은 이야기들을 성공적으로 갈무리했다. 반응도 뜨겁다. 15일 넷플릭스 공식 순위 집계 사이트인 넷플릭스 톱10에 따르면 ‘더 글로리’는 파트2 공개 후 단 3일 만에 1억2446만 시청 시간을 기록했다. 단숨에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고, 영어·비영어, TV·영화 부문을 통틀어 전체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을 비롯한 23개 국가에서 1위에, 도합 79개 국가의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파트2에서는 학창 시절 박연진(임지연 분) 무리에게 극심한 학교폭력을 당한 동은이 본격적으로 복수에 나선 모습이 그려진다.

복수의 중심 연진(임지연 분)은 물론 얄팍한 우정으로 연명하던 가해자들은 동은의 치밀함에 속절없이 무너졌고, 서로를 물어뜯으며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 동은을 든든하게 조력한 피해자 연대는 각자의 영광에 다가서는 결말을 맞았다. 가해자는 파멸하고 피해자는 살아남는, ‘용두용미’의 복수극이라는 호평이 나온다.

▲(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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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진 반격으로 긴장감 고조…각자 죄악으로 몰락한 가해자들

파트2는 연진의 반격으로 서문을 열며 긴장감을 높인다. 그가 자신한 것처럼, 연진은 동은을 상대할 ‘새 고데기’를 찾았다. 정미희(박지아 분), 동은의 생모를 끌어들이며 반전을 꾀한 것.

앞서 미희는 가해자 무리로부터 합의금을 받기 위해 동은의 합의서를 작성하며 시청자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동은을 버리고 사라진 줄 알았던 그는 이번에도 돈을 위해 동은을 또다시 배신한다.

연진이 동은을 학교에서 내쫓아주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하자, 미희는 동은의 학교와 집을 찾아가 난동을 부리는 것은 물론, 주변 사람에게까지 접근했다.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핏줄’을 내세우는 모습에 일각에서는 “박연진보다 더한 빌런”이라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냉정한 동은도 미희 앞에선 격분하며 망가진다. 미희가 동은의 집에 불을 지르고 “잘못했다고, 죄송하다고 빌어”라며 날뛸 때 동은은 또 한 차례 무너졌다. 그러나 동은은 미희가 그토록 내세운 ‘핏줄’을 역이용해 상황을 해결한다. 알코올 의존증을 이유로 미희를 병원에 입원시킨 것. 그는 울부짖는 미희를 향해 “이건 나만 할 수 있는 거야. 내가 엄마의 유일한 핏줄이니까”라고 일침을 가한 후 미련 없이 등을 돌린다.

가해자들의 몰락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동은은 직접 가해자를 벌주지 않는다. 동은이 치밀히 계획한 판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이 무너진 계기는 모두 자신의 죄 때문이다. 연진의 엄마 홍영애(윤다경 분), 강현남(엄혜란 분)의 남편 이석재(류성현), 부패 경찰 신영준(이해영), 무당(윤진성 분)도 마찬가지다.

특히 연진은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폭로가 나오며 회사에서 쫓겨나듯 퇴사했고, 맹목적인 사랑과 보호를 제공할 줄 알았던 엄마에게 배신당했다. 무엇보다 그의 가장 큰 영광으로 꼽히던 남편 도영과 딸 예솔에게 외면받았고, 교도소에 수감돼 수용자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면서 누구보다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

앞서 연진은 자백을 권하는 동은에게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라고 조롱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은숙 작가는 “나는 그걸(권선징악과 인과응보) 정말 믿는다”고 강조했다. 작가의 의도대로, 가해자들은 모두 자신의 죄악으로 추락한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지금까지 수많은 막장 복수극은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벌어진 부조리를 피해자가 너무나 손쉽게 처리하는 데 성공해 허무감을 안겼다면, ‘더 글로리’는 가해자들이 스스로 저지른 죄로 인해 자멸하게 만들어 카타르시스와 위로를 줬다”고 평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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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히 뭉친 피해자 연대…온기 자아내는 에피소드도 눈길

복수를 소재로 하는 장르물이지만, 견고한 연대를 갖췄다는 점은 기존 복수물의 관념을 깨부순다. 남편의 가정폭력에 고통받는 강현남(엄혜란 분)은 동은과 복수를 도모한 ‘공범’에서 끈끈한 유대감을 지닌 인물로 거듭났다. 명랑한 현남은 동은의 웃음을 자아내고, 차갑고 잔혹한 복수에서 뚜렷한 환기점이 되어준다.

‘칼춤 추는 망나니’를 예고했던 주여정(이도현 분)의 지원도 든든하다. 동은과 현남, 여정은 서로의 상처에 공감, 서로 협력하며 장애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일말의 분열로 서로를 헐뜯으며 파멸한 가해자들과는 상반되는 연대다.

에덴빌라 건물주 할머니(손숙 분)의 조용한 조력도 눈길을 끌었다. 파트1 초반, 동은에게 나팔꽃을 건네며 의미심장한 모습을 보여준 할머니는 동은의 또 다른 지원군이었다. 18년 전 죽음을 결심하고 한강 물에 뛰어들었던 동은은 먼저 물에 빠져 있던 할머니를 발견했다. 그는 음주운전 사고로 아들을 잃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동은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당시 동은에게 “물이 너무 차다. 우리 봄에 죽자”며 위로를 건넸다.

과거 서로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동은은 사라지기 전 할머니 앞으로 편지를 남겼다. “한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뭐가 됐든 누가 됐든 날 좀 도와줬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열여덟 번의 봄이 지났고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에게도 좋은 어른들이 있었다는 걸. 그리고 지금은 추우니까 나중에 더 따뜻할 때 봄에 죽자던 말은 봄에 피자던 말이었다는 걸요. 저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잘 크진 못했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어느 봄에는 활짝 피어날게요.”

이외에도 “신파는 싫다”며 현남을 위로한 딸 선아(최수인 분), 추정호(허동원 분)의 약점을 전달한 동료 선생님의 도움 등도 ‘더 글로리’ 속 희망이 되며 온기를 전달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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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라인은 여전히 아쉬워…안길호 PD ‘학폭 의혹’은 아이러니

김은숙 작가는 여전히 러브라인을 놓지 못했다. 파트2에서는 동은과 여정의 키스신 등 로맨스 요소가 그려져 몰입을 해친다는 아쉬움이 나온다.

극 중 러브라인은 파트1에서도 아쉬운 지점으로 지목된 바 있다. 시청자 사이에서는 ‘문동은의 숨통이 꼭 이성적 사랑이어야 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사랑이 주요 소재인 복수와는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며, 피해자 연대의 이해와 공감, 유대감 등 복합적인 감정과 관계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숙드(김은숙 드라마)’ 치고 담백한 로맨스가 그려진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은숙 작가는 제작발표회에서 “계속 똑같은 복제를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며 “초고를 보고 감독님이 ‘로코 멜로’냐고 하시더라. 많이 (멜로로) 갔다가 정신 차렸다”고 밝혔다. 비하인드 코멘터리 영상에서는 “감독님이 안 말렸으면 4부 엔딩은 키스신이었다. ‘국룰’이거든”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작품 외부에도 아쉬움을 자아내는 지점이 있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파멸을 그렸지만, 정작 안길호 PD의 학교폭력 논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 모양새다. 의혹에 대해 “그런 기억이 없다”고 부인하던 안 PD는 후속 보도가 나오며 이를 일부 인정, 사과했다. 학교폭력에 경종을 울린 드라마 연출자가 과거 자신의 학교폭력을 시인한 상황은 분명한 아이러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무엇보다 현실적인 대목”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도 나오고 있다.

아쉬움에도 ‘더 글로리’는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파트2가 공개된 10일 오후 5시에는 이용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일시적으로 접속이 안 되거나 버퍼링이 생기는 넷플릭스 서버 오류까지 나타났다. 해외 언론 매체는 ‘더 글로리’ 열풍을 소개하면서 한국에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학교폭력 문제를 조명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한국의 실제 학교폭력 사건에서 드라마의 서사적 추진력이 나온다”며 2006년 청주에서 일어난 ‘고데기 학교폭력’ 사건, 2021년 프로배구 이재영·이다영 선수의 논란을 구체적으로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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