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연수 성추행 일어나도…6개월 미만 단기유학 '사각지대'

입력 2023-03-18 07:00 수정 2023-03-3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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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A 씨는 지난해 자녀의 단기 어학연수를 위해 서울 대치동에 있는 한 유학대행사를 찾았다. 대행사는 필리핀 현지의 어학원을 연결해줬고 가족들은 부푼 마음을 안고 6주 일정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일정 둘째 날 수업을 받고 온 아이에게 사고가 발생했다. A 씨는 유학대행사와 어학원이 사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 6개월 미만의 단기 유학을 하는 학생들의 안전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A 씨가 주장하는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해 10월 만 6세인 아이가 필리핀 어학원 수업에서 원어민 강사로부터 어떤 일을 겪었다며 어머니인 A 씨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폐쇄된 강의실에서 진행되는 1대 1 수업에서 선생님이 아이의 바지에 손을 넣어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성추행으로 판단한 A 씨는 유학대행사에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치료비 보상과 다른 어학원으로의 이동 등을 요구했다.

유학대행사는 A 씨의 이야기를 듣고 합의를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원어민 강사의 가해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고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 치료비 산정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엇갈렸다고 한다. 현지 어학원은 사건 앞뒤 정황과 A 씨, 원어민 강사의 진술 등을 미뤄볼 때 A 씨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그럼에도 A 씨의 요청에 따라 원어민 강사를 해고했고 수업료 전액 환불도 제안했다.

유학대행사와 현지 어학원은 위로금 등을 지원을 약속하면서도 ‘법적인 책임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이에 A 씨는 억울함과 분통함을 느꼈다. 서로의 감정이 격해지며 A 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관련 게시물을 계속해서 올렸고 유학대행사도 A 씨를 비방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A 씨는 “합의가 문제가 아니다. 법적 책임 없다며 사건을 처리하는 행태가 문제”라며 “진심이 담긴 사과 없이 2차 가해를 하는 모습을 보며 피해자를 우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6주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대한 비용을 결제하는 과정에서 ‘계약서’를 쓰지 않은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A 씨가 유학대행사에서 비용을 내고 등록을 하던 당시 받은 것은 계약서를 대신하는 ‘인보이스’와 학원서류였다. 일반적인 유학대행사들 또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원어민 강사를 처벌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살펴봤다. 영사관을 통해 원어민 강사를 고소했지만, 재판으로 넘어가도 상황은 쉽지 않다. 피해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가족들이 재판에 수차례 참석해 진술을 해야 하는데, 필리핀을 수차례 가는 것이 녹록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유학대행사와 현지 어학원을 대상으로 법적인 조치를 취하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현지 어학원은 필리핀 법인이기 때문에 소송은 현지에서 진행해야 하고, 국내에서 한다면 송달하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만약 승소한다고 할지라도 필리핀 현지 자산 압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A 씨 측은 이 유학대행사가 사실상 ‘기획여행’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에서 어학원 등록금 등 여행에 대한 대부분의 비용이 현지 어학원이 아닌 유학대행사에 지급됐고 계약서도 없었기 때문에 어학연수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여행사의 형태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해당 업체 측은 “이 사건의 이용자 측은 저희를 여행사로 보고 있지만, 여행사가 아닌 유학원이 맞다”며 “중개수수료를 받고 수속 대행을 해주는 유학원에 현지에서 일어난 일에 법적 책임은 없지만 도의적 차원에서 최선을 다해 보상을 제안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고객과 유학원이 모두 피해보지 않을 보험 또는 국내 유학시장의 법적 시스템은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국외 유학과 관련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국외유학에 관한 규정’은 유학원과 유학대행사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 규정에서 정의하는 유학이란 ‘6개월’ 이상의 연수이기 때문에 6주 일정으로 이뤄진 이번 사건은 규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맹점이 있다.

성추행이 실제 일어났는지에 양쪽 의견이 엇갈리지만 이와 별개로 단기로 진행되는 유학에 대해서도 제도적인 장치가 갖춰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A 씨의 법률대리인인 박재홍 변호사(법률사무소 태희)는 “유학대행사와 현지 어학원 모두 책임에 선을 긋고 있어 손해보상을 받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법적인 구멍에 대해 책임 범위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업체 측은 "고객을 비방한 것은 사실과 다르며 사건 초기에 실수를 한 부분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수차례 사과를 드렸다"며 "통상 현지에서 사고가 생기더라도 유학원이 보상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우리는 아이 학비와 치료비 등을 모두 보상을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학원이나 유학원에서는 사건의 사실여부를 떠나 치료비 등 보상을 제시했으나 고객이 원하는 원하는 금액이나 조건이 맞고, 온라인 비방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합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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