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이 부당한 관행을 끊어내고자 월례비 지급을 중단하려 한 바 있다"(2월 23일 국토부 설명자료)
"월례비 수수한 타워크레인 조종사, 운전대 못 잡는다"(3월 2일 국토부 참고 자료)
"월례비 등 부당한 금품수수"(3월 10일 국토부 보도자료)
국토부가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월례비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내놓은 자료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국토부의 발표를 보고 있으면 '월례비=불법'이란 공식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오른다. 여기에 경찰이 월례비를 요구한 타워크레인 기사를 입건하거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는 뉴스가 더해지면 월례비를 불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게 더 어렵다. 하지만 조금만 뜯어보면 이같은 주장에 오류가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월례비, 협박 등 있어야 불법"…국토부도 "인정"
30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 달 보도 설명자료를 통해 "급여보다 높은 월례비는 정상적인 근로계약에 의한 것이 아니고 월례비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면 합법적인 근로계약에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월례비가 근로계약에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이란 논리다. 근로계약에 없지만 조종사의 요구 등에 따라서 묵시적으로 지급해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법조계의 판단은 다르다. 김남근 변호사는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며 "묵시적으로라도 양측의 합의가 있다면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이 되기 위해서는 월례비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협박이나 공갈 등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월례비 자체가 아니라 '부당한 행위가 있었느냐'가 판단 기준이란 설명이다.
월례비의 성격에 관해서는 초과·위험 근무에 대한 수당으로 봐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최근 법원도 월례비를 정상적인 임금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월례비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수십 년간 지급해 온 것으로 사실상 근로의 대가라는 것이다.
통상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초과 근무나 위험 작업 등을 하면 한 달 치를 다음 달 입금 받는다. 일반적으로 월급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 구조다. 세부적으로 보면 현장에 따른 편차는 있지만 보통 하루 근로시간 8시간에 1시간 정도는 추가로 지급을 한다. 여기에 토요일도 5~6시간 정도를 지급해 52시간에 맞추고 있다.
하지만 월례비 문제가 불거지면서 조기출근 시나 추가 근무로 인한 수당에 대한 이견이 커서 최근 현장에서는 이에 대한 집행이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자료에서의 표현과 달리 월례비가 불법이 아니란 점은 국토부도 인정하는 모습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월례비를 모두 불법으로 규정한다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협박, 공갈 등을 통해 부당하게 요구하는 경우만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작업 속도 기준 없는데…'태업' 판단은 어떻게?
국토부는 '태업',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준법'이라고 주장하는 작업 속도 문제도 월례비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월례비를 받지 않는 대신 초과 근무, 위험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을 그 자체로 불법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국토부는 이달 월례비 미지급을 이유로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작업을 지연 또는 거부할 경우 '성실의무 위반'으로 간주해 면허를 정지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성실한 업무수행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15개 세부 기준도 제시했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준법투쟁을 하면서 작업 속도가 느려졌다는 건설업체의 불만이 나온 데 따른 대응이다.
불성실 업무 유형은 △평소보다 의도적으로 작업을 늦출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조종석 탑승 등 작업 준비를 완료하지 못한 경우 △과도한 저속 운행 △작업 중 동영상 시청 △음주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중 음주와 동영상 시청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타워크레인의 적정 작업 속도 등과 관련해 명문화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통상적으로 현장에 설치된 풍향계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초당 기준이상의 바람이 불 경우 경보음이 울리고 이 경우에는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하지만 통상 현장에서는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면 작업을 진행해 왔다.
또한 작업에 따라 조종사가 아래 현장을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경우 신호수 등 2~3명을 배치해야 하지만 중.소형 현장의 경우 사실상 배치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 대충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것 역시 준법운행을 적용할 경우 빈번히 작업이 중단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즉 공사 현장과 진행 상황, 기상 상태 등 시시각각 변하는 특성을 고려하면 사실상 기준을 잡을 수 없는 것이 태반이다. 나머지 조건이 모두 같아도 현장에 건물이 몇 개, 몇 층까지 올라갔느냐에 따라 같은 작업도 시간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과도한 저속 운행과 관련된 기준은 타워크레인 '사용 설명서'에서 찾을 수 있다. '10분 주기 이내에는 저속 구동을 2분 이상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저속 운행으로 기계가 고장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다.
국토부도 태업을 판단할 뚜렷한 기준은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적정 작업 속도 등에 관해 정해진 바는 없다"며 "태업 여부는 현장에서 신고가 들어오면 타워크레인에 설치된 운행 기록장치와 건설 현장 녹화 영상 등을 통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에 정부가 강하게 압박기조로 나서면서 현장에서는 월례비가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것보다는 현장에서 운행되는 타워크레인 대비 조종 자격증을 가진 조종사들의 수가 너무 많다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는데 이에 대한 수급 조절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