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지배구조에 대한 비판여론이 통신사로 비화하며 KT의 CEO가 연임하는 것에도 제동이 걸렸다. 이사회를 통해 연임에 성공한 기존 대표이사는 셀프 연임했다는 빗발친 비난을 견디지 못해 연임을 포기했다. 그 뒤를 이어 차기 CEO로 내정된 후보도 전방위 압박에 부딪혀 자진 사퇴하였다.
외부의 공격으로 민간회사에서도 창업주 대표가 내몰린 독특한 사례가 발생했다. 불세출의 연예인인 이수만 씨가 설립한 SM은 회사명도 창업자 이름을 따라 명명했고, 경영자 1인의 개인기에 의해 회사가 성장했다. 이수만 대표는 우리나라 연예계에 기획사라는 체제를 처음 도입했고 기획 단계부터 세계화를 추진하여 한류 열풍을 일으킨 공로가 크다. 그런데도 기업 경영이 불투명하여 투자가로부터 경영권을 박탈당한 것이다.
SM을 인수한 카카오는 지난달에 주식을 공개매수한 결과, 지분 40%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되었다. BTS를 키운 하이브가 이수만 대표의 우군으로 카카오와 인수 경쟁을 벌였으나 대다수의 주주들은 카카오 편을 들어 주었다. 카카오의 공개매수 가격은 주당 15만 원으로 하이브의 12만 원보다 높아 발행 주식의 80%가 몰렸고 하이브까지도 청약에 참여해 SM 주식을 처분하였다. 한 편의 드라마처럼 복잡한 사연을 가진 SM 경영권 분쟁은 절대권력을 가진 1인 창업주도 주주가치를 소홀히 하면 축출될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주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살펴보면 몇 가지 시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모두 ‘외부의 힘’에 의해 최고경영자가 물러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명백한 차이는 은행과 통신사에는 ‘정부의 힘’이 작용했고 SM에는 ‘시장의 힘’이 작동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지배구조 논란은 오너 가족이 경영하는 민간 대기업에 초점이 맞춰졌다. 실제 지분은 작지만 대주주라 불리며 경영권을 장악해 사적 이익을 위해 다수의 소액주주 권익을 침해하였다. 전근대적 지배구조로 인하여 기업가치보다 주주가치가 낮아져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까지 나왔다.
기업의 소유권이 분산되어 경영권이 오너에서 전문경영인으로 넘어가면 이런 폐해가 해소될 줄 알았다. 그런데 대주주가 없는 지배구조에서는 경영자에 의한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고 있다. 은행이나 통신사의 경우 지분도 갖지 않은 경영자가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셀프 연임하고 장기집권하며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민간기업 지배구조의 한계는 정부와 정치권이 개입할 명분을 제공한다. 법령을 개정해 대주주의 권한을 제한하며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며 지배구조를 뿌리째 흔드는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진다. 정부의 힘을 배경으로 관피아와 정피아가 낙하산으로 내려와 기업경영을 장악하는 것이다.
결국, 한국형 지배구조의 취약성을 초래하는 3대 원흉은 ‘욕심 많은 대주주’, ‘부도덕한 전문경영인’, ‘타락한 낙하산’들이다. 지분은 없으면서 주주를 속이고 착취하는 기회주의자요 불량 대리인이다. 이들이 야기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주주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
국민연금은 작년에 기금 운용에서 79.6조 원의 손실과 -8.22%라는 수익률을 기록했는데, 이런 최악의 손실은 대부분 국내 주식투자에서 나왔다. 미래의 연금이 기업의 주식가치에 달렸으니 주식 하나 없다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볼 일이 아니다.
상장사 지배구조의 본질적 개선은 기업의 실제 주인인 주주에게 달려 있다. 이번에 삼성전자의 주총에서 주가 하락을 두고 소액주주의 항의가 커서 경영진이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주식가치가 폭락한 한샘의 경우에는 소액주주 연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전자투표가 도입되어 주총에 가지 않고도 표결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게 진짜 자본주의 민주혁명이다. 주식을 보유한 개인이 주인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해야 진정한 지배구조 개선이 이루어지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