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기부는 ‘찔끔’…글로벌 기업 맞나

입력 2023-04-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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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속한 지역사회를 지원합니다. 우리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관행들을 포용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시민들을 존중하고 환경을 보호할 것입니다.”

미국의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이 2019년 발표한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선언문’ 중 일부다. BRT는 미국 내 200대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로 구성된 협의체이자 이익단체다. 전미제조업협회, 미국 상공회의소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로비 단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BRT가 처음 세워진 것은 1972년이며 78년부터는 기업의 목적을 담은 지배구조 원칙을 발표해왔다. 이 원칙은 꾸준히 수정됐지만, 기업이 주주를 위해 존재한다는 근본은 바뀌지 않았다. 이러한 BRT가 2019년 8월 181개 대기업의 CEO가 모여 새로운 선언문을 발표하게 되는데, 기업이 주주뿐만 아니라 고객과 협력사, 임직원, 지역사회 모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수년 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작년 5월 국내 대기업, 중소·중견기업, 스타트업과 경제단체 관계자들이 모여 ‘신기업가정신 선포식’을 열고, 이 자리에서 BRT의 선언문과 유사한 내용을 담은 기업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날 선포식에 앞서 삼성전자, 현대차 등 대기업과 배민, 토스 등 벤처기업, 금융권, 경총, 무역협회, 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단체까지 총 76명의 기업인이 서명했다. 대한상의는 ERT(Entrepreneurship Round Table; 신기업가정신협의회)라는 협의체를 만들어 경제계의 신기업가정신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선언문에 담긴 5대 실천과제는 경제적 가치 제고, 윤리적 가치 제고, 기업문화 향상, 친환경 경영, 지역사회와 상생 등이다.

미국과 한국의 주요 경제단체가 공히 기업의 목적이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확장함을 명확히 한 것으로, 기업의 사회공헌은 더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며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이른바 ‘착한기업’을 소비자들이 ‘돈쭐’내는 것이 일상인 시대가 됐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이 사회공헌에 지출하는 비용도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발간한 ‘2021주요 기업의 사회적 가치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기업 219개사가 2021년 한 해 동안 다양한 분야에 지출한 사회공헌비용의 총 규모는 2조9251억여 원, 평균 금액은 133억여 원에 달한다. 아울러 이러한 사회공헌 활동은 비단 국내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 사업하는 외국계 기업들이 국내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사회환원에 너무 인색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10여 년 된 자료이긴 하나 2011년 국세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외국기업 1420개 업체가 지출한 직전년 기부금 총액은 36억여 원, 업체당 259만 원에 불과했다. 당시 44만여 국내 기업들의 평균 기부금 796만 원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일부 외국기업들의 경우 과거보다 개선된 사례도 파악된다. 다만 ‘짠물’ 기부금에 반해 거액의 배당 잔치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을 본국의 모기업으로 보내는 기업들도 여전하다. 특히 명품기업들의 행태가 그러한데, 2021년 제출한 감사보고서를 기준으로 국내 진출한 명품기업 20곳 가운데 6곳만 기부금을 지출했으며, 이들이 낸 기부금은 22억여 원에 그친 반면 배당금과 수수료 명목으로 본사에 보낸 돈이 2580억여 원에 달한다는 과거 기사도 있다.

기부가 강제는 아니나 과연 이들이 본국에서도 한국에서와 같은 짠물 기부만 하지는 않으리라 추측된다. 글로벌 기업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스스로 체면을 깎아 먹을 일이다. 언제든 한국 시장에서 발을 뺄 생각이 아니라면 국내에서 기부를 포함, 사회공헌에 힘써 존중받는 기업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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