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장기 기증

입력 2023-04-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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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

키가 줄어든 할아버지는 눈매마저 처져 원래 슬픈 건지 슬픈 일이 있었던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얼마 전 아내의 상을 치렀다는 말에 쳐진 눈매가 더욱 슬퍼 보였다. 아침을 먹고 화장실을 간다며 간 아내가 나오지 않아 가보니, 화장실에 쓰러져 있는 아내를 발견했고, 119가 오고 바로 응급실로 갔지만,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것도 애석한 일이었지만 할아버지의 슬픔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상을 다 치르자마자 장가도 안 간 40대 막내아들이 쓰러졌다고 했다. “누구보다 지 엄마를 좋아했던 아들인데. 사업한다고 밤낮 신경을 쓰더니만….” 할아버지는 말을 맺지 못했다. 막내아들은 뇌출혈이었다. 의식도 없고 자기 숨도 못 쉬고 큰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는데, 의사들이 자기에게 와서 아드님 장기를 기증하시면 어떻겠냐고 물었다고 했다.

연이어 들은 황망하고 충격적인 소식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럴 땐 어떡해야 하는지 원장님에게 좀 물어봐야겠다고 오셨다고 했다. “그게, 그것이 아드님을 가장 고귀하게…, 아드님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이 아니겠냐”며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말을 하였다.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은 4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2021년 장기 이식 대기 중 사망한 사람은 2480명에 이른다. 반면, 같은 해 뇌사 기증자는 442명으로 1477건의 숭고한 장기기증이 있었다. 4만 명과 442명, 그 까마득한 숫자 사이에는 속이 애끓는 기다림과 억장이 무너지는 사연이 있다.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사람도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도 ‘하늘만은 알아주겠지’ 싶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복잡한 장기 이식의 동의와 절차는 할아버지의 남은 자식들이 담당할 것이다. “자세한 과정은 병원과 자제분들이 상의할 거예요”라고 말씀드렸다. “걔들이 알아서 하겠지만….” 말을 흐리는 할아버지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뭐라도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일이 시작되고 진행되는 절차에서 아들의 생을 의미 있고 고귀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막내의 아버지니까…. 그냥 떠나보낼 수 없는 자식의 아버지니까….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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