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아시아…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슈크래커]

입력 2023-04-21 16:22 수정 2023-04-2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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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지난해 8월 2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문에 설치된 성화 열기로 시민들의 모습이 일그러져 있다. (뉴시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지난해 8월 2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문에 설치된 성화 열기로 시민들의 모습이 일그러져 있다. (뉴시스)

지난 이틀간, 여름이 불쑥 찾아왔습니다. 19일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낮 기온이 30도 안팎까지 오르면서 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씨가 이어졌는데요. 강원 영월은 30도, 서울은 28.4도, 수원은 28.2도로 4월 중순 최고 기온 중 역대 2위를 기록했습니다. 전날(18일)에는 낮 기온이 20도를 밑돌면서 서늘했는데, 하루 만에 10도가량 크게 오른 겁니다.

이른 더위는 비를 뿌리던 저기압이 빠르게 물러가고 우리나라가 고기압 영향권에 들면서 찾아온 것으로 분석됩니다. 20일에도 이 같은 더위가 이어지면서 겉옷을 벗어 던진 사람들이 많았죠.

비슷한 시기 아시아 각지에서도 무려 40도를 넘는 폭염이 관측됐습니다. 19일(현지시간) AFP통신과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달 15일 태국 서부 딱주의 기온은 역대 최고인 45.4도로 기록됐습니다. 라오스 유명 관광지인 루앙프라방은 최근 기온이 42.7도까지 오르면서 기상 관측 이래 4월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고요. 방글라데시에서는 58년 만에 기온이 40도를 넘으면서 수도 다카 곳곳의 아스팔트 도로가 녹은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인도 마하라슈트라에서는 수십만 명이 강한 햇볕 아래 야외 행사를 하다 최소 13명이 열사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이처럼 기록적인 폭염이 우리나라에도 상륙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기상청은 올해 한국 일부 지역에서도 40도를 넘는 ‘역대급 폭염’이 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폭우가 그치고 서울 전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지난해 7월 1일 오후 한 시민이 서울 중구 서울광장인근에서 양산으로 햇빛을 가리고 있다. (뉴시스)
▲폭우가 그치고 서울 전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지난해 7월 1일 오후 한 시민이 서울 중구 서울광장인근에서 양산으로 햇빛을 가리고 있다. (뉴시스)

매년 찾아오는 ‘역대급’ 폭염…“1994년엔 3300명가량 사망”

폭염은 매년 ‘역대급’, ‘최악’ 등의 수식어와 함께 등장하는 모양새입니다.

무더위가 극심했던 1994년에는 한국에서 30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서울(38.4도)을 비롯해 대전(37.7도)과 광주(38.5도) 등지에서는 낮 기온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대구의 경우에는 낮 기온이 섭씨 39.4도까지 치솟았는데요. 폭염은 33일 동안 이어졌다고 합니다. 서울에서만 10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2016년과 2018년에도 폭염은 기세등등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대기 상층에는 티베트고기압 중심이, 하층에는 북태평양고기압 중심이 자리하면서 ‘열돔’이 형성됐습니다. 최악의 폭염이 자리 잡을 조건을 갖춘 겁니다.

2016년에는 5월부터 폭염주의보가 내려졌고, 7월 말부터 8월까지 기온이 큰 폭으로 상승해 지속되면서 폭염(22.4일) 및 열대야(10.8일)가 연일 발생했습니다. 특히 연평균 기온은 13.4도로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죠. 폭염과 열대야뿐 아니라 태풍, 호우, 한파 등 다양한 이상기후가 발생한 한 해였습니다. 2016년은 전 세계에서 가장 무더웠던 한 해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2018년은 우리나라가 가장 더웠던 해였습니다. 그해 8월 1일, 서울 최고 기온은 39.6도까지 치솟았죠. 강원 홍천군은 무려 41도를 기록했습니다. 홍천 기온은 1942년 기록된 40도를 넘어서면서 한국이 기상 관측을 시작한 1907년 이래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하기도 했는데요. 홍천 외에도 강원 춘천시(40.6도), 경북 의성군(40.4도), 경기 양평군(40.1도) 등이 40도를 넘기면서 혀를 내두르게 했습니다.

2018년은 평균 폭염 일수도 총 31일로 길었습니다. 충남 금산군은 그해 7월 11일부터 8월 16일까지 37일간 단 한 번도 33도 아래로 기온이 떨어진 적 없습니다. 그해 온열 질환자는 4526명으로 기록됐습니다. 역대 두 번째 기록인 2016년 2125명의 두 배를 뛰어넘는 수치입니다.

▲폭염이 이어진 지난해 8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잠원한강공원에서 시민이 한남대교 남단 아래 평상에 누워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뉴시스)
▲폭염이 이어진 지난해 8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잠원한강공원에서 시민이 한남대교 남단 아래 평상에 누워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뉴시스)

전 세계, 올해 역대 최고 더위 기록할 수도…“엘니뇨가 돌아온다”

올해 전 세계 평균 기온이 신기록을 경신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일찍이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데요.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기후 관측 기관 코페르니쿠스는 20일(현지시간) 역사상 다섯 번째로 따뜻했던 지난해 기후 평가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이같이 전망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에 따르면 태평양에서 이례적으로 3년간 지속된 라니냐가 늦여름쯤 엘니뇨로 전환되고, 연말에 강력한 엘니뇨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라니냐는 무역풍이 강해지며 적도 태평양 지역 해수면 온도가 낮아지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는 엘니뇨의 반대 현상입니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일정 주기로 번갈아 나타나곤 하죠.

카를로 부온템포 EU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 책임자는 “엘니뇨는 일반적으로 역대급 고온과 관련이 있다”며 “올여름 시작해 연말 강력한 엘니뇨가 발생하면서 올해 또는 내년에 예년 고온 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습니다. 2016년 전 세계적인 무더위의 주요 원인이었던 엘니뇨 현상이 올해에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프리데리케 오토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그랜섬 연구소 수석 강사는 엘니뇨로 인한 이상 기온이 폭염·가뭄·산불 등 이미 여러 국가가 겪고 있는 심각한 기후 현상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가 지적한 것처럼, 전 세계 각지에서 이상 기후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 유럽에서는 기록적으로 높은 기온이 관측됐는데, 파키스탄에서는 재앙 수준의 홍수가 발생했습니다. 올해 2월에는 남극 해빙 면적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고요.

또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산불이 수차례, 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습니다. 18일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에만 458건의 산불이 발생했는데, 이 중 대응 3단계 규모 산불은 7건으로 지난해(11건)의 절반을 벌써 넘어선 상황입니다. 2021년 1년 치는 진작에 넘어섰죠. 높은 낮 기온, 오래 지속된 건조한 날씨 등 기후 변화가 산불이 번지기 쉬운 환경을 조성한 겁니다.

지난해 2월 UN환경계획(UNEP)은 기후 변화와 산불은 ‘상호 악화’ 관계라고 지적했습니다. UNFP는 기후 변화로 인해 2030년까지 대형 산불이 최대 14%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는데요. 국립산림과학원도 온도가 1.5도 증가하면 산불 기상지수(산불 발생에 최적인 기상 조건을 나타내는 지수)가 8.6% 상승한다고 올 1월 발표했습니다.

▲유희동 기상청장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회 국가현안 대토론회 ‘100년간 기상 데이터로 본 기후위기, 대응 과제는?’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뉴시스)
▲유희동 기상청장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회 국가현안 대토론회 ‘100년간 기상 데이터로 본 기후위기, 대응 과제는?’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뉴시스)

이상 기후 현상 막으려면…“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절실”

미국에서는 폭염을 ‘조용한 살인자’라고 부르곤 합니다. 태풍, 홍수와 달리 조용한 가운데 다수의 인명을 빼앗아가는 탓인데요.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가 기존과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만큼,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00여 년간 연평균 기온이 약 1.6도 오르면서 전 세계 평균인 1.09도보다 0.7도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전 세계 평균보다 더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겁니다. 근본적 원인으로는 온실가스 배출이 지목됩니다.

강도 높은 탄소 배출 감축 노력이 없으면 75년 후에는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이 현재보다 최대 6.3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 상황입니다. 유희동 기상청장은 이달 1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회 국가현안 대토론회 발제자로 나서 기후 위기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는데요. 탄소 감축 없는 고탄소 시나리오를 따라 개발이 진행될 경우, 2100년경 우리나라 기온은 산업혁명 이전 대비 6.3도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97일인 여름 일수는 170일로 ‘2배’ 늘어나고, 겨울 일수는 107일에서 39일로 대폭 줄어들게 됩니다. 폭염 일수는 현재보다 최대 9배 증가해 이틀에 한 번꼴로 난다고 하죠.

유 청장은 기상기후 데이터를 오픈API에 공개해 전 국민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서 기후 위기 대응을 시작해야 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오픈API는 누구든지 데이터를 가져다가 분석·가공할 수 있게 하는 정보공개 방식입니다. 그러나 유 청장이 강조했듯, 정부 차원의 합의가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유 청장은 “바람직한 기후 변화 대응책은 시민 개개인이 실제 행동하는 ‘국민주도’를 이끄는 정책”이라면서도 “다만 이에 대한 불공정과 불감증 때문에 국민주도로 확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처음에는 공공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과학적이고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시민들에게 합리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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