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다시, 출발선에서(중견기업 특별법의 상시법 전환에 부쳐)

입력 2023-04-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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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재석 214인 중 찬성 213인, 기권 1인으로 중견기업 성장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김영주 국회 부의장이 의사봉을 세 번 두드렸다. 중견기업계 10년 숙원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중견기업 특별법은 2014년 7월 22일 시행됐다. 선순환하는 기업생태계 조성과 글로벌 전문기업으로의 중견기업 육성을 취지로 삼았다. 여야가 함께 참석한 5차례의 국회 릴레이 정책토론회가 입법의 기초가 됐다. 중소기업 지원 축소 등 우려로 인해 10년 한시법으로 제정됐지만, 성과는 기대를 한참 웃돌았다. 법 제정 이후 10년, 중견기업이 이뤄낸 성취는 눈부실 정도다. 중견기업 수는 2011년 2743개에서 2021년 5480개, 매출은 428조 원에서 853조 원, 고용은 93만 명에서 159만 명, 수출은 659억 달러에서 1138억 달러로 약 두 배씩 성장했다. 법의 효용성 여부에 대한 더 이상의 논거는 필요하지 않다.

지난해 8월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으로 취임한 뒤 특별법의 상시법 전환에 집중했다. 정부가 국정과제로 선정한 만큼 당연하다 여겼지만, 그럴수록 더 많이 설명하고, 더 깊이 설득했다. 11월 7일에 열린 ‘제8회 중견기업인의 날 기념식’에는 대통령이 참석해 ‘특별법’의 항구화를 통한 안정적인 중견기업 지원·육성 제도 기반 구축을 약속했다. 국회의 시간이 시작되는 걸 느꼈다.

중견기업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절박함을 깊이 이해하게 됐다. 경영을 걱정하는 깊은 주름 속에는 어김없이 국가 경제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이 선명했다. 특별법 일몰 이후에 대한 우려는 성장의 단절에 대한 두려움 탓이었다. 특별법이 일몰되면 중견기업 정책 추진 근거가 사라질뿐더러, 관련 입법 공백은 산업과 경제에 커다란 혼란을 야기할 터다. 세제 지원이 감소하고 R&D 등 정부사업 참여 부담이 늘어나면 기업의 위축은 불가피하다. 중견기업이 휘청이면 투자가 줄고 일자리가 사라진다.

출근하듯 국회를 찾았다. 공직에서의 국회 업무 담당 경험은 다행히 큰 자산이었다. 고맙게도 수많은 중견기업인이 앞서거나 뒤를 받쳤다. 대내외 경제 환경이 악화일로인 상황에서 중견기업 발전과 특별법의 지속에 대한 여야의 공감은 깊었지만, 여전히 많은 말과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상시법화에 대한 중소기업계의 기우를 불식시키는 것이 긴요했다. 2022년 6월 9일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상시법화 개정안을 세워둔 채, 국회의 정치적 공방 속에 시간은 화살처럼 흘러갔다.

상시법으로 전환하는 최초의 법안이 발의된 지 295일,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과 한무경 의원,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세 건의 법률안을 조정, 통합했다. 2023년 3월 30일 16시 12분, 전광판이 초록빛으로 가득 찼다. 반대표는 없었다. 기쁘다기보다 안도한 중견기업인들의 문자가 휴대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중견기업 특별법 상시법 전환의 가장 큰 의미는 중견기업인들의 헌신과 중견기업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법의 이름 아래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데 있다. 법과 제도의 불합리한 사각지대에 갇혀 있던 중견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켤 공간을 확보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민간 주도 성장의 성공 또한 이 자리에서 출발하리라 믿는다.

상시법 전환 이후 최우선 과제는 특별법의 전면 개정이다. 지원 특례를 확대하고 펀드·기금 근거를 마련하는 등 현장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중견기업 지원 체계를 더욱 내실 있게 강화해야 한다. 여타 법령과 제도 전반에 중견기업을 또렷하게 새겨 넣어 특별법을 중심으로 흔들리지 않는 법적 안정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공직 생활 30년 동안 수많은 법률의 제·개정 작업에 참여했다. 완벽한 법체계는 이상일 뿐이지만, 이견과 갈등을 해소하는 토론과 협력은 민주주의의 본령이다. 중견기업의 가치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부칙 조항 하나 바꾸는 것보다 훨씬 힘든 여정이 되겠지만, 어려운 건 당연하다. 5000여 중견기업인의 큰 응원을 받으며 새로운 각오로 다시 출발선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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