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에코프로를 비롯한 LX 등 8개 그룹이 대기업집단(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됐다. 이에 따라 이들 집단은 공정거래법 상 주요 공시 의무와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 등을 적용 받게 된다.
쿠팡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미국 국적의 김범석 이사회 의장은 이번에도 그룹 총수(동일인)로 지정되지 않으면서 3년 연속 사익편취 규제를 피하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5월 1일자로 82개 기업집단을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이하 공시집단)으로 지정한다고 25일 밝혔다. 공정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매년 5월 1일까지 공시집단을 지정하고 있다.
올해 지정 공시집단 수는 전년보다 6곳이 늘었다. 이번에 공시집단에 신규 지정된 곳은 2차 전지 사업에서 높은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는 에코프로를 비롯해 LX, 고려에이치씨, 글로벌세아, DN, 한솔, 삼표, BGF 등 8곳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2차전지, 전기자동차 부품 등 신산업 분야로의 진출에 따른 기업집단의 성장으로 공시집단의 수가 증가했다"며 "특히 에코프로, 고려에이치씨, 글로벌세아, DN의 경우 전년 대비 자산총액이 2조 원 이상 증가해 신규 지정됐다"고 밝혔다.
대기업집단 편입이 예상됐던 BTS 소속사인 하이브는 대기업집단 명단에서 빠졌다. 하이브는 대중음악 기획·제작 등을 하는 글로벌 콘텐츠 집단(15개 계열사)으로 2021년 이후 사업규모가 급격히 확대됐지만 올해 3월 SM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 인수 포기에 따른 자산총액 5조 원 미달(4조8100억 원)로 미지정됐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지난해 공시집단으로 지정됐던 현대해상화재보험, 일진 등 2곳은 자산총액 감소 이유로 이번 대기업집단 지정에서 제외됐다.
에코프로 등 8개 그룹이 공시집단에 편입되면서 에코프로의 이동채 회장, LX의 구본준 회장, 고려에이치씨의 박정석 회장, 글로벌세아의 김웅기 회장, DN의 김상헌 부회장, 한솔의 김동길 회장, 삼표의 정도원 회장, BGF의 홍석조 회장이 그룹 전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됐다. 이들에겐 대기업집단 지정 자료 제출 등의 의무가 부여된다.
이에 따라 이들 총수의 친족(혈족 4촌·인척 3촌 이내), 비영리법인, 계열사, 임원 등 동일인 관련자 범위도 결정됐다. 그 영향으로 공시집단 소속회사는 작년 2886곳에서 올해 3076곳으로 190곳이 늘었다.
이들 소속회사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대규모내부거래공시·비상장회사 중요사항 공시·기업집단 현황공시 및 주식소유현황 신고,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총수 있는 집단 대상)를 적용 받는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함이다
공정위는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집단(이하 상출집단)에 48개 그룹(전년대비 1곳↑)을 지정한다고 밝혔다. 상출집단에 신규 지정된 집단은 LX, 장금상선, 쿠팡 등 3곳이다. 지정 제외된 집단은 교보생명보험, 두나무 등 2곳이다.
상출집단으로 지정된 48개 집단의 소속회사(2169곳)는 공시집단 적용 규제 외 상호출자금지, 순환출자금지, 채무보증금지,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의 규제도 받는다.
올해 공시집단 지정에서 동일인이 변경된 집단은 DL(옛 대림)로 삼성 등 연속 지정집단(74개) 중 유일하다. 공정위는 DL 동일인을 종전 이준용 명예회장에서 그의 아들인 이해욱 회장으로 변경했다. 이해욱 회장이 디엘, 대림 등 주요 계열회사에 대한 회장 취임 후 주요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있고 최상단 회사인 대림의 최다출자자(52.26%)라는 게 변경 이유다.
올해 처음으로 공시집단의 동일인, 배우자, 동일인 2세의 국적 현황을 분석한 결과도 공개됐다. OCI 동일인인 이우현 부회장이 미국인으로 확인됐다.
그 외에도 배우자가 외국국적을 보유한 집단은 7개, 동일인 2세가 외국국적(또는 이중국적)을 보유한 집단은 16개(31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쿠팡의 실질적 오너인 창업주 김범석 의장(미국 국적)은 2021년과 2022년 이어 올해에도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쿠팡 동일인이 법인으로 유지되면서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를 3년 연속 피하게 됐다는 얘기다.
한 위원장은 "쿠팡은 국내에 개인 회사, 친족 회사가 없는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고, 별도의 기준 없이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경우에는 가령 주가 하락 등을 이유로 투자자 국가분쟁 소송(ISD)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계 외국인이 지배하는 기업집단 등장과 외국국적(이중국적 포함)의 동일인 2세 등이 다수 존재하는 것이 확인됨에 따라 외국인 동일인 지정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다만, 외국인 동일인 지정기준의 통상마찰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산업부 등 관계부처와 충분히 협의해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행령 개정 후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 지정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2022년 말 전면 개정된 공정거래법에 따라 2024년부터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이 아닌 명목 국내 총생산액(GDP)의 0.5% 이상인 기업집단을 상출집단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현재 진행 중인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기준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기준 개선도 검토한다. 이를 위해 현행 상출집단 지정기준과 유사하게 GDP에 연동하는 방안, 자산기준금액을 조정(상향)하는 방안 등 현재의 경제상황에 적합한 지정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