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후발자의 혁신 역량, 기로에 선 中 과학기술

입력 2023-04-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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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현, 영남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

10여 년 전만 해도 중국산 제품이라면 그 앞에 꼭 붙는 형용사가 있었다. ‘싸고 질 낮은’이란 표현이다. 가짜를 뜻하는 ‘짝퉁’이라는 단어도 중국산 제품과 같은 의미로 쓰인 적이 있었다. 이제 중국산은 최소한 가성비가 괜찮다는 대접을 받지, ‘싸구려’라고 폄하되지는 않는다.

중국은 과학기술논문(SCI)에서 양과 질 모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중국은 과학, 기술, 공학, 수학 등 대부분 영역에 걸쳐 논문의 양적 지표는 물론 피인용지수 상위 10% 및 최상위 1% 논문 수라는 질적 지표에서도 미국을 추월하였다(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글로벌 미·중 과학기술 경쟁 지형도’, 2021). 연간 특허출원에서도 중국은 2021년부터 국제특허로 불리는 PCT 특허에서 미국을 추월하였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은 정부가 앞장서서 천문학적인 재원을 투입하고, 14억 명에서 선발된 우수 인재가 연구와 혁신을 담당한다. 한때 중국에서의 연구성과물은 쓸데없이 양만 많다는 혹평을 받았다. 마치 중국산 제품에 대한 평가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물론 단기간 급증에 따른 실험 조작, 짬짜미 관행 등등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다양한 기초학문 분야에서 중국의 연구성과는 분명 세계 선두권이다.

그런데 과학논문을 많이 썼다고 그 나라 기업이 곧바로 기술혁신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기초연구 결과는 이후 십수 년의 후속 연구를 거쳐 그중 일부가 상용화에 성공한다. 중국 과학기술계의 미스터리는 풍부한 양적, 질적 성과가 상용화로 이어지지 않는 데 있다. 물론 여기에는 선진국의 경험처럼 시간이 지나면 연구성과가 상용화로 이어져 첨단제품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와 중국 특유의 억압적 분위기로 연구와 제품개발이 분리되어 기술혁신이 요원하다는 반박 논리가 상존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후발자 우위(late comer’s advantages)라는 개념으로, 후자는 후발자 열위(late comer’s disadvantages)라는 개념으로 대응한다. 이들 두 주장은 중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기술혁신이 미친 효과에 대해서도 엇갈린 판단을 내린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미·중 간 기술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기업의 기술혁신을 더욱 채근하고, 정부 지원도 더 늘리려 한다. 그런데 앞서 3월 전인대에서 보였듯이 중국이 원하는 기술혁신은 최첨단 기술의 개발이 아니라 주요 제품의 국산화율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혁신이었다. 그렇다면 중국의 기술혁신은 신기술개발이 아닌 모방기술 또는 수입대체기술 분야에서 발생할 것이다. 최신 연구성과와 상용화 사이의 괴리가 더 벌어질 수 있다. 앞으로의 과학기술 연구가 국산화 100%를 위한 상용화에 맞춰지면 과학자는 창의적인 연구를 하기 어려워진다. 제도가 혁신을 가로막는 후발자 열위의 상황이다.

독일 싱크탱크인 메르카토르중국학연구소(MERICS)는 최근 보고서(Controlling the innovation chain, 2023)에서 중국 정부가 기술의 상용화와 국산화라는 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과학기술 분야에서 정부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한다고 분석하였다. 기존에는 정부산하 연구소가 연구프로젝트를 담당했다면, 이제는 국유기업 연구소가 상용화를 목표로 대형 프로젝트를 책임진다. 정부 지원금의 선정 기준에서도 논문이나 특허보다 상용화의 여부가 더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아마도 상용화로 이어지는 연구가 늘어나기는 할 것 같다. 그런데 다양한 창의성 있는 연구로부터 기술의 상용화가 이루어져야 그게 정상이다. 정부 지시를 쫓아가는 기업이 창조적 파괴를 가져올 혁신을 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누가 무슨 자격으로 연구와 기술의 가치를 평가할지 의문이다. 중국 과학기술의 운명이 독재자의 ‘선량한’ 손에 달렸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科学无国界, 科学家有祖国).” 시진핑 주석이 2020년 9월 11일 한 과학 포럼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여기에는 두 개의 뜻이 담겨 있다. 하나는 중국이 필요로 하는 과학기술이라면 세계 어디에 있든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지 확보하라는 것이다. 미국과 느슨한 관계에 있는 유럽 국가들이 중국의 주요 목표가 될 수 있다. 그 뒤의 말이 더 의미심장한데, 과학자는 국가가 원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중국 전역에서 선발된 수재 중의 수재들이 학문적인 호기심을 바탕으로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명령한 과제를 수행한다면 거기에서 무슨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앞으로 중국에서 생산되는 첨단제품의 국산화율은 올라갈 것이며, 이를 독려, 축하하는 당의 홍보물 역시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중국 과학계와 기업의 혁신 역량은 하향 평준화될지 모른다. 학계에서는 후발자 열위를 ‘후발자 저주(late comer’s curse)’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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