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안이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행까진 갈 길이 멀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제2 양곡관리법’ 사태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료계의 반발도 변수다. 의협을 주축으로 한 보건복지 의료연대는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이날 간호법 제정안 처리는 국민의힘이 퇴장한 가운데 이뤄졌다. 181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79표, 기권 2표로 가결됐다.
더불어민주당안을 중심으로 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대안을 놓고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자 국민의힘과 정부는 제정안 제1조에서 ‘지역사회’라는 표현을 삭제한 중재안을 내놨다. 하지만 대한간호사협회(간협)는 중재안을 거부했고, 이날 본회의에선 복지위 대안이 표결에 부쳐졌다. 본회의 직전까지 간협과 당·정은 격하게 대립했다. 간협이 간호법이 원안(복지위 대안)을 고수하자 국민의힘은 ‘시민단체 배후론’을 제기했고, 간협은 협상 테이블을 걷어찼다.
기존에 간호법은 ‘까봐법’으로도 불렸다. 의협 등이 간호법 제정에 반대했던 주된 이유가 ‘간호사의 단독 의료행위가 가능해질까봐’, ‘간호사의 의료기관 단독 개설이 가능해질까봐’, ‘간호사에 의해 간호조무사 일자리가 침해될까봐’, ‘간호사 특혜로 직역 간 차별이 발생할까봐’ 등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간호법 제정안은 내용 면에선 보건복지부가 25일 발표한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과 큰 차이가 없다. 간호법은 기존 ‘의료법’의 간호사·간호조무사 관련 조항을 떼어내고, 여기에 간호사 등의 권리·처우 개선을 위한 사항들을 추가 규정한 법이다.
사실 간호법 논쟁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간호법은 충분한 논의 없이 민주당이 단독으로 본회의에 직회부를 결정한 법안이다. 정부가 그동안 간호법 처리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내용보단 이런 ‘절차상 하자’ 때문이다. 여기에 ‘의료인 면허취소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개정안이 간호법과 묶음으로 추진됐다. 의료인 면허취소법에 대해 의협은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과잉입법’이라고 반대해왔다. 이 밖에 간호법 논쟁에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 의협 회장 선거, 의료수가 협상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간호법 본회의 통과에 따른 의료계의 대응은 불 보듯 빤하다. 앞서 의협 주도로 구성된 보건복지 의료연대는 간호법 처리 시 다음 달 총파업을 진행하겠다고 예고했다.
가장 큰 변수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앞서 국민의힘은 간호법 본회의 통과 시 윤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재적의원 과반이 출석한 본회의에서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의결된다. 재적의원이 전원 참석한다면 200표 이상 찬성이 필요한데, 민주당의 보유 의석은 복당한 민형배 의원까지 170석이다. 결국, 거부권 행사는 간호법 제정 무산을 의미한다. 앞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재의 요건을 넘지 못하고 부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