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1930년대 세계대공황의 원인이 된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기억할 것이다. 미국 산업을 보호하려고 2만여 개 수입품에 평균 59%, 최대 400%의 관세를 부과한 법이다. 이 법이 시행되자 교역 상대국들도 보복관세와 수입제한조치를 취하게 돼 경제공황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1947년 23개국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체결해 관세장벽과 수입제한을 점진적으로 철폐하다가 1995년 강력한 실행력을 갖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전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WTO 체제의 핵심은 △국산과 외산제품 차별 금지 △자국산업에 특혜가 되는 불공정한 보조금 지급 금지 △교역상대국이 국제무역규범을 위반할 경우 WTO 분쟁해결절차에 따라 조치할 것 등으로 요약된다. 세계무역은 이 다자주의 무역질서하에서 큰 발전을 해왔고, 우리나라도 그 혜택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강대국들의 정책을 보면 15~18세기 중상주의가 유럽을 휩쓸었을 때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의 전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기치로 내걸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 등 교역질서를 자국에 유리하게 바꾸고, 중국과의 관세전쟁을 시작했다. 바이든 행정부도 동맹국의 불만이나 피해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국중심주의를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매한가지다. 반도체·배터리·수소 등 전략산업의 자체 공급망을 갖추려고 미국과 비슷하게 작년부터 반도체법, 핵심원자재법, 탄소중립산업법 등의 입법절차를 밟고 있다. 중국은 또 어떤가? 서방국가들은 중국이 2001년 WTO 가입으로 다자주의 혜택은 누린 채 의무는 다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10개 첨단 중간재 산업의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까지 높이려는 ‘중국제조 2025 전략’을 추진하면서 기업들에 불공정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각종 비관세장벽과 ‘궈차오’(國潮)로 불리는 애국소비로 자유무역질서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외 나라들도 정도 차이가 있을지언정 자국중심주의의 예외는 아니다. 세계는 이제 각자도생(各自圖生) 시대에 접어든 듯하다.
앞으로도 국가 간 각자도생 경쟁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게 바뀐 만큼 다자주의 무역질서를 전제로 한 우리의 경제발전 전략도 수정해야 한다.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취하자는 것이 아니다. 자유무역주의는 견지하되, 국제규범 때문에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필요한 정책수단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미국과 유럽연합처럼 정부 지원을 통해 미래 세계경제를 주도할 산업을 키워야 한다. 필요한 경우 이념적·지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경제적 이해관계가 같은 나라들과 협력해 원자재와 시장을 확보해야 한다. 또 국내에서의 경직적 노동시장과 과도한 환경규제를 개혁해 우리 기업들이 밖에 나가지 않고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되, 강대국 공급망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 기업들의 해외투자가 필요한 경우에는 더 좋은 조건이 갖춰지도록 국가가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
찰스 다윈은 “경쟁에서 살아남는 종(種)은 가장 강하거나 똑똑한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종”이라고 했다. 지금의 각자도생식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