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직설] 노동시장 이중구조, 호봉제 탓인가

입력 2023-05-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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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설 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

임금체계 개편을 통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정책과제다. 윤석열 정부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법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들고나왔다.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로 인해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원청-하청 근로자 간 임금격차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진단과 처방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있느냐는 점이다. 지금껏 많은 정부에서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 게 사실이다. 임금체계가 워낙 복잡해 단기간에 개선하기 어려운 데다 마땅한 해결책도 없기 때문이다. 임금체계 개편이 실속 없고 소리만 요란하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윤 정권은 이전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근본 원인을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집단이기주의에서 찾고 있다.

기득권 노조들이 호봉제를 무기삼아 임금인상 투쟁에 나서면서 2차 노동시장인 하청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를 벌린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급제와 성과급제로 바꾸면 격차가 해소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과연 이러한 해법이 통할까.

호봉, 임금서 차지하는 비중 낮아

먼저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생성된 배경부터 살펴보자. 이중구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과 노조의 담합구조 아래 확대된 측면이 강하다.

경제위기를 겪던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이 과정에서 노조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군살빼기를 하며 홍역을 치렀던 기업들은 경제회복 과정에서 노조의 암묵적 동의 아래 신규 인력의 상당 부분을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충당했다. 기득권 노조는 그 대가로 고용안정과 고율의 임금인상을 획득했고 이 과정에서 노동시장 약자인 비정규직과의 격차를 벌리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고착시켰다.

하지만 지금의 임금격차 문제는 노사관계 차원을 넘어 산업환경 변화 때문이란 분석이 맞을 듯싶다. 경제의 글로벌화, 수출 대기업의 급성장, 산업구조 재편 등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산업별, 기업별, 규모별, 고용형태별 임금격차는 더욱 확대돼갔다. 이중구조의 요인이 임금체계보다 산업환경 변화에 더 영향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국가 또는 산업 차원에서 연대임금을 실행했던 유럽국가들도 변화하는 경제환경 흐름에 이를 포기하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골자로 하는 스웨덴 연대임금은 이미 1983년 막을 내렸고 독일의 하르츠개혁(2003년)과 프랑스의 마크롱개혁(2018년)은 산별협약 의무준수를 면제해주는 개방조항을 도입했다. 기업 간, 산업 간 경영실적이 크게 달라지면서 연대임금을 고집하기 어려워진 데 따른 조치다.

지금 우리나라 이중구조의 원인도 임금체계 차원이 아니다. 돈 잘 버는 수출 대기업과 금융공기업 근로자들은 호봉제, 직무급제 상관없이 고액의 연봉을 받는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1억4000만 원을 넘어섰다. 연봉의 40~50%에 달하는 이익성과급을 합칠 경우 신입사원 연봉도 1억원에 육박한다.

개편대상 설정 등 방향부터 잡길

연봉 5000만 원대인 현대차 고졸 생산직 1년차도 이익성과금을 합하면 7000만원이 넘는다. 이에 반해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은 이들 기업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친다. 호봉이 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졌다. 매년 노조가 임금투쟁을 벌인 탓에 이중구조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현대차의 경우 호봉 간 임금 차이는 1만4400원에 불과하다. 매년 2호봉씩 오르는 호봉승급분은 기본급의 1.3% 수준이다. 공무원의 한 호봉 5만4790원(9급 기준)에 비해 한참 적다. 이 때문에 현대차 기술직 30년 차 임금(약 750만 원)은 1년 차 임금(약 400만 원)의 1.9배로 우리나라 30년 차 전체 근로자의 평균 임금배율 (2.8배)에 크게 못 미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다고 해서 성급하게 임금체계를 뜯어고칠 경우 오히려 임금질서가 왜곡될 수 있다.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하고 있는 공공부문에서는 나눠먹기식 평가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임금체계 개편은 무엇보다 방향을 잡는 게 중요하다. 이중구조 개편 대상을 전체 근로자로 할 것인지, 산업별로 할 것인지, 기업별 원청-하청 근로자로 할 것인지부터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처방도 산별교섭을 확대할지, 하청단가 현실화에 집중할지, 호봉제와 직무-성과제를 고려한 종합적인 임금체계를 설계할지 등의 해법이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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