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3억 날린 주문실수…대법 “증권사 잘못, 취소 못해” [‘한맥證 사태’ 10년 만의 결론①]

입력 2023-05-14 09:00 수정 2023-05-1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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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적 호가란 사정만으로 착오 알고 이용했다 단정할 수 없어”

2013년 12월 ‘알고리즘 매매’ 사고발생
옵션실수로 거대손실…2015년 2월 파산
美 헤지펀드, 2분여 만에 360억 가져가

“거래 상대에 책임 못 물어” 패소
한맥證‧예보, 이익금 전액 반환 못 받아

(그래픽 = 이투데이 DB)
(그래픽 = 이투데이 DB)

증권사 직원이 실수로 낸 460억 원대 파생상품 자동매매거래 사고를 취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최종 결론이 사건 발생 10년 만에 나왔다. 특히 대법원 상고심만 6년 넘게 길어지는 극히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투자매매업자 한맥투자증권이 미국 헤지펀드 ‘캐시아 캐피탈’을 상대로 착오를 이유로 한 계약 취소 및 부당이득 반환을 구하는 소송에서 “원고의 상고를 기각한다”고 14일 밝혔다.

이로써 이른바 ‘한맥증권 사태’ 파장을 몰고 온 파생상품 거래의 취소는 물론 부당이득 반환 청구까지 기각한 원심 판결은 확정됐다.

쉽게 말해 파생상품 거래계약을 법적인 하자 없이 체결한 캐시아 캐피탈은 한맥증권에게 360억 원 전액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캐시아 캐피탈은 한맥증권이 입은 463억 원에 달하는 손실 가운데 가장 많은 360억 원의 거래가 체결된 상대방이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심판정에 대법관들이 착석해 있다. (사진 제공 = 대법원)
▲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심판정에 대법관들이 착석해 있다. (사진 제공 = 대법원)

클릭 한 번에 어이없이 날아간 463억

법원에 따르면 2013년 12월 12일 한맥증권 직원은 파생상품 거래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작동을 위한 변수 중 일부를 잘못 입력했다. 옵션 가격 변수인 이자율 계산을 ‘잔여일/365’로 계산해야 하는데, 실수로 ‘잔여일/0’이라고 써넣었다. 때문에 소프트웨어가 제시해야 할 호가의 매수가격 상단과 매도가격 하한이 설정되지 않았다. 모든 상황에서 이익 실현이 가능하다고 본 프로그램은 막대한 양의 거래를 체결해버리게 된다.

직원은 뒤늦게 실수를 알아차리고 곧바로 전원코드를 뽑았으나 불과 143초, 채 3분이 안 된 순간에 무려 3만7900여 건에 이르는 알고리즘 매매거래가 이뤄졌다. 당일 코스피 지수는 2000선을 넘어섰고 15분간 폭등과 폭락을 오갔다. 한맥증권 대표는 한국거래소에 거래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구제 신청을 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문제는 각각의 개별 거래마다 구제 신청을 따로 해줘야 했다는 데 있었다. 수십 명의 직원이 일일이 거래 하나하나 구제 신청을 했지만 신청기한이 오후 3시 30분까지라 그 시간 내에 4만 건 가까운 신청을 전부 처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제 시한인 12월 13일 오후 4시까지 결제대금을 납입하지 못한 한맥증권은 파산 위기에 몰렸다. 한맥 측에서는 거래 상대들을 찾아다니며 빌고 다녔다. 동종 증권업계에서는 이익금을 반환해줘 20억 원 정도는 돌려받았지만, 가장 많은 360억 원의 이익을 본 미국 헤지펀드 캐시아 캐피탈이 거부하면서 이익금 대부분을 돌려받지 못했다. 43억 원 가량을 취한 홍콩 소재 증권회사 IND-X 등 역시 한맥 측의 이익금 반환 요청을 거절했다.

한맥증권은 ‘한맥 사태’가 터진지 약 1년 뒤인 2014년 11월 캐시아 캐피탈이 불법거래로 부당이득 360억 원을 취했다는 취지를 담은 고소장을 서울남부지검에 냈다.

한맥증권은 2번의 영업정지 기간을 거치면서 432일이 흐른 2015년 2월 16일 최종 파산해 시장에서 영구 퇴출됐다. 서울중앙지법 파산12부(이재권 부장판사)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예금보험공사를 파산관재인으로 선임했다.

예보는 한맥증권이 파산 선고를 받자 소송 수계인으로 참여하게 됐다.

▲ 소프트웨어 작동방식 구조도. (자료 제공 = 대법원)
▲ 소프트웨어 작동방식 구조도. (자료 제공 = 대법원)

순식간에 체결된 4만건…계약 취소는 일일이 구제신청?

재판에선 자동매매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파생상품 거래와 관련, 직원이 소프트웨어의 규칙 설정을 위한 변수를 잘못 입력했고 이를 기초로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이례적인 호가를 생성‧제출함에 따라 파생상품 계약이 맺어진 경우 착오를 이유로 해당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1심과 2심은 캐시아 캐피탈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는 자신이 제출하려는 호가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그 계산의 기초가 되는 사정에 관해 착오를 일으킨 것”이라며 “착오에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민법 제109조(착오로 인한 의사표시) 제1항을 보면 의사표시는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다.

한맥 측의 중과실로 계약을 취소하지 못한다는 원심 판결에 불복한 예보가 2017년 4월 상고하면서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다.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민법 제109조 제1항 단서 규정은 표의자(의사표시를 한 사람)의 상대방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표의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

상고심까지 사건을 끌고 간 예보 측이 이 같은 대법원 판례 입장을 들어 캐시아 캐피탈이 한맥증권의 착오를 알고 이용했다는 점을 끈질기게 파고들면서 대법원의 고심이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6년 넘는 심리 끝에 “단순히 표의자가 제출한 호가가 당시 시장가격에 비춰 이례적이라는 사정만으로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원고의 착오로 인한 취소를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수긍한다”고 판시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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