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다우키움그룹 김익래 회장의 모노드라마

입력 2023-05-15 17:00 수정 2023-05-1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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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0일. 중국 최대 갑부인 마윈 전 알리바바 회장이 1년 후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날이다. 그는 성명을 통해 “알리바바 이사회 주석(회장) 자리를 장융 CEO(현 알리바바 회장)에게 승계한다”고 밝혔다. 마윈은 “진지하게 10년간 물러날 준비를 해왔다”라며 “(저의 사퇴는) 알리바바가 전적으로 특정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회사에서 인재에 의존하는 기업으로 업그레이드됐음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정확히 1년 뒤 그는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중국 정부의 핀테크 규제를 작심 비판하면서 퇴임 후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마윈의 결단과 새 출발은 한국 기업 풍토에선 보기 어려운 ‘창조적 파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대기업에서는 총수 자녀가 해외 유학을 다녀온 뒤 초고속 내부 승진을 거쳐 경영권을 물려받는 ‘세습 경영’이 공식처럼 굳어져 있다. 경영자가 지녀야 할 자질이나 능력을 제대로 검증받지도 않고, 책임의식보다 특권의식에 젖어 갑질과 반칙을 일삼는다. 기업의 사회공익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나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은 사회적 눈높이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한 요인이다.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사태 후 나눔과 베풂을 실천한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을 새삼 다시 본다.

김 전 회장은 지난 4일 늦은 오후 서울 여의도 키움증권 본사에서 기자회견 형식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는 “높은 도덕적 책임이 요구되는 기업인으로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 사과드린다”라고 말하며 허리를 숙인 뒤 “(다우키움그룹) 회장과 키움증권 이사회 의장직을 사퇴하고 다우데이타 주식 매각 대금(605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저의 주식 매각에 대해 제기된 악의적 주장 대해서 객관적인 자료로 소명하고자 했으나 논란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국민 여러분께 부담이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면서 “매도 과정에 법적인 문제가 없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사태로 모든 국민께 상실감을 드린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사퇴를 결심하게 됐다”며 자기변명도 잊지 않았다.

죄 없는 사람이 왜 사퇴를 하지(?) 적잖은 주주들과 국민은 아직도 의문을 품는다.

시장 안팎에서는 김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결정을 놓고 다소 무책임한 결정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주가 폭락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룹 회장직은 물론 등기이사직 등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서 물러난 자연인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대기업 총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태가 잠잠해지면 다시 돌아오겠지만.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키움증권의 초대형 투자은행(IB)인가 신청을 앞둔 평판 리스크 관리라는 해석도 있다. 키움증권은 애초 올해 상반기에 초대형IB 인가를 금융당국에 신청하는 것이 목표였다. 금융당국은 초대형IB를 승인할 때 자기자본 요건은 물론 회사와 대주주의 평판 등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한다.

피땀 흘려 번 돈을 사재를 내놓는 이유도 도통 모르겠다.

김 전 회장의 기부행위를 심리회계이론(mental accounting theory)으로 들여다 보면 어떤 마음일까. 상황에 따라 돈(금액)의 개념을 달리한다는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 교수의 이론이다.그는 심리회계란 “경제적 활동을 계획하고, 평가하고, 유지하기 위한 일련의 인지 작업”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배고픈 노숙자에게 돈을 주는 일이더라도 내 돈을 쓰는 일은 심적 고통을 가져온다. 이때 심리회계가 심리적 고통의 정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생때같은 내 돈’이란 마음이 든다면, 이런 돈을 기부하는 행위는 상당히 고통스러울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돈은 기부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 이미 마음에 입력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내가 노숙자에게 돈을 줬을 때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사회에 복귀해 새로운 삶을 산다면 자신을 포함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마음을 갖는다면 기부의 고통은 누그러질 것이다.

1980년대 홍콩 영화를 주름잡았던 주윤발. 그는 2018년 전 재산 7억19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주윤발은 기부에 대해 “ 돈은 내 것이 아닌, 잠시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돈은 행복의 원천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의 기부가 고통이 아닌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선한 기부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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