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금융당국의 마른 수건 짜기

입력 2023-05-16 13:36 수정 2023-05-1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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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마른 수건을 짜고 있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창작의 고통은 아니다. 금융·자본시장을 어지럽힌 ‘나쁜 놈’을 잡으려고 마른 수건을 비틀고 있다. 인력난 얘기다.

주가 조작 의혹 사태가 자본시장을 연일 흔들고 있다. “억울하다”고 하소연한 투자자문업체 대표는 얼마 전 포승줄에 묶여 취재진 앞에 섰다. 검찰과 금융당국은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기소를 준비 중이다. 총선을 앞둔 국회에서도 주가 조작 의혹 사태를 연일 조명하고 있다. 사태 발생 후 금융당국은 여당 대표실을 찾아갔다.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에서는 4시간 내내 금융당국의 대응력을 문제 삼기도 했다. 이 와중에 금융회사의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CEO들과 함께 해외 출장에 나선 금융감독원장의 ‘이상한’ 행보도 거론됐다. 모 의원은 주가 조작 의혹 사태로 “총 7만2514명의 일반 개인투자자가 7730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일부 ‘꾼’들의 소행이 7만여 명의 피해자를 양산한 대사기극이 된 것이다.

금융위 조사단, 타부서 인력 수혈…주가 조작 이외 업무 제속도 못 내

금융위 내에서 주가조작 사태는 자본시장총괄과와 자본시장조사과에서 다루고 있다. 작년 말에 기존 자본시장조사단(이하 자조단)이 2개과로 개편된 것이다. 2개 과에 배치된 인력은 30명 남짓. 이 가운데 약 10명은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에 파견됐다. 나머지 인력 대부분도 이번 주가 조작 사태에 집중하고 있다. 유명 연예인과 고소득 직업군이 관여되고, 사기 수법 또한 새로운 유형이다 보니 금융위, 금감원 모두 총력전 중이다.

그러다 보니 주가조작 사건 이외에 기존에 모니터링하거나 조사를 진행 중이던 사건은 처리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 당초 조사과에서 계획했던 조사 스케줄도 지연될 수 밖에 없다. 금융위는 타부서의 일부 인력을 자본시장총괄과·자본시장조사과에 임시 배치하는 수를 썼다. 일부 인력을 내보낸 해당 부서 역시 일손이 부족할 수 있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금융위 내부에서는 “행정안전부에 인력 증원을 요청하고 싶지만 그럴 시간조차도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금감원 인력난도 매한가지…“새마을금고·가상자산 업무 맡아야만 늘까”

금감원도 인력난 고충은 매한가지다. 올해 2월 기준 금감원의 전문심의위원 및 직원 현원은 2060명(정무위 업무보고)이다. 작년 말 기준 금융투자 검사대상 기관은 3664개다. 신종 사기 수법을 사전에 감지하고 차단하기 인력이 충분하다고 얘기하기 힘든 구조다. 모니터링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자본시장업계를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게 금감원 내부 목소리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의 인력 증원을 기대할 기회가 두 번 정도 있다고 본다. 현재는 직접적인 감독 권한이 없는 새마을금고로 검사 대상 기관으로 편입할 경우와 가상자산 감독·검사 업무를 본격적으로 맡을 경우다. 과거 대부업 감독을 맡게 돼 인력을 소폭 증원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본시장도, 그 외 업권도 갈수록 다양해지는데 현재 금감원 구조로 감독·검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어렵다. 그나마 증원할 기회가 새마을금고나 가상자산 감독권인데 이마저도 인력을 충분하게 늘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금융·자본시장에서 발생한 일련의 불·위법 사건들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궤변이 필요한 게 아니다. 자본시장의 세계화를 논할 땐 시장 질서를 바로잡아줄 역할이 충분한 지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 참여자들이, 금융당국이 언급하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영국 금융감독청(FCA)의 인력과 권한은 어디까지인지 말이다. 성숙한 자본시장을 위해 악인(惡人)들의 진입을 끊어내려면 그에 대등한 감시자들도 필요하다. 마른 수건을 열심히 비틀다 보면 멀쩡하던 손목도 탈이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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