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주거의 한 축을 담당한 전세 제도가 수술대에 오른다. 최근 전세 사기와 집값 하락에 따른 ‘깡통전세’(전세 보증금이 매맷값보다 낮은 주택)가 속출하면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새 전세 제도는 거래 자율성은 확대하되, 투명성은 강화하는 방안으로 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17일 본지 취재 결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전세 제도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며 “전세 사기 등을 예방할 수 있는 판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인천 미추홀구 ‘빌라왕’ 사례 등 집값 하락기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례가 전국에서 터져 나오자 전세 제도 자체를 손봐 추가 피해를 막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전세 개편 방안은 거래 투명성 강화를 통해 보증금 미반환 위험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 원 장관은 개선 방향에 대해 “보증금이라는 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임대·매매 가격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관리 시스템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등이 맞물려야 한다”고 말했다. 필요하면 전세 보증금 에스크로와 부동산거래소 설치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복수의 부동산·금융연구 기관 분석을 종합하면, 전월세 거래의 정확한 파악을 위해선 주택거래 정보공개 범위 확대와 부동산 거래 관련 부처 간 거래 데이터베이스 연계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론 금융감독원과 같은 ‘부동산거래감독원’ 설치도 실시간 파악을 위한 거래 신고제 도입이 점쳐진다.
국토연구원이 2021년 펴낸 ‘주택거래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에 따르면 깡통전세 등 임대차 거래시장 문제점 해결을 위해선 “한국부동산원 거래정보시스템(RTMS)와 법원 등기부 등기정보 데이터 중 등기부 권리분석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주택거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기 과제로는 부동산거래감독원 등 단일 감독기구를 설치해 최소한 거래분석 기능은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거래 투명성 강화는 곧 임대인의 거래 행위 감시 강화와 시장 규제로 이어지는 만큼 전세 감소와 집주인 저항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2020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부동산거래감독원 설치 법안이 발의됐지만 시장의 거센 반발 등으로 흐지부지됐다.
큰 틀에서 보면 전세 제도의 성격은 개인 사이의 거래이므로 국가가 법으로 재단하는 식의 개편은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진형 공정경제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전세 계약 자체가 민법상 제도이므로 이를 손대면 다른 법과 충돌하는 문제가 많아 간접적 방식을 써야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전세 제도를 직접 손보는 것이 아니라 전세대출 규제 강화 등 간접 정책 시행이 우선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박춘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 전세제도 관련 보고서에서 “전세 계약의 투명성을 유지하고, 전세 계약으로 가계부채가 과도하게 누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며 “현재 100%에 가까운 전세자금대출 보증 비율을 점진적으로 낮춰 보증부월세 등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이 문제의 원인인 만큼 임대인을 직접 규제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사업자가 자기 임대소득으로 사업에 필요한 운영자금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대출을 허용해 수십, 수백 가구를 보유하는 ‘무자본 갭투자’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