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근로자는 무슨 죄로 대출도 못 받나”

입력 2023-05-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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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꽃들 산업부 기자

“노동자가 잘못한 게 1%라도 있다면 뭐라고 안 하겠는데, 단 1%도 잘못한 게 없다. 오로지 사업주의 책임인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가 받고 있다.” HD현대중공업 하청업체 근로자의 절규다.

조선업 불황기에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월급에서 꼬박꼬박 4대 보험 공제가 됐다. 근로자들은 4대 보험을 안 낸 적이 없는데 사업주가 안 냈다. 이처럼 사업주가 체납한 사실을 그동안 근로자들은 모른다. 급한 돈이 필요해 몇백만 원이라도 빌리려고 직장인 신용대출을 받으려 은행에 가면 그제야 건강보험이 체납됐다며 대출이 안 된다고 얘기를 듣는다. 몇백만 원 빌리려고 제2금융권도 안 돼 제3금융권까지 가게 된다. 악순환의 고리다.

더 큰 문제는 이미 폐업한 업체가 체납을 하면 체납 이력에 대한 꼬리표가 끝까지 따라붙는다. 새롭게 일하는 업체에서 정상적으로 내고 있음에도 대출이 계속 안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5년 전에 폐업한 업체에서 체납했고, 근로자가 500만 원이 필요해서 은행을 갔더니 과거에 체납한 게 있어서 대출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평생 1금융권을 이용 못 한다는 셈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사업주가 사라져 버렸는데 갚을 일도 없고 납부의무자인 사업주가 안 낸 건데 피해는 근로자가 고스란히 받는다. 첫 번째 피해는 자기 급여에서 보험료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체납된 것이며, 두 번째 피해는 이로 인해 사회적인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정부가 조선업종을 포함한 4대 업종의 체납을 유예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데 아무도 안 진다. 근로자들은 최소한 대출은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냐며 토로한다. 돈을 갚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서 돈을 빌리겠다는 건데 이를 못 한다는 점에 분통을 터뜨린다. 4대 보험 체납피해액은 현재 가동되는 업체만 270억 원, 폐업한 업체(50여 개)까지 합치면 450억 원이 넘는다. 피해자 대부분은 최저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수년 동안 고질적인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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