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늘면 GDP 성장률 하락
한은 금리인상 무용론 평가도
고금리로 줄어들었던 가계대출이 1년 새 큰 폭으로 늘어났다. 한국은행의 긴축 기조에도 대출금리가 하락세를 보이면서다. 긴축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전문가들은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성 하락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새로 취급한 가계대출은 15조3717억 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69.4% 급증했다. 전월(18조4028억 원) 역시 1년 전보다 86% 늘어났다. 향후 주담대 금리가 더 내려간다고 예상할 때 가계대출 증가세는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는게 시장의 관측이다.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확대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은이 최근 낸 ‘가계신용 누증 리스크 분석 및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대출 규모가 1%포인트(p) 늘어나면 4~5년의 시차를 두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25~0.28%p 낮추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이 80%를 웃돌 경우 중장기뿐만 아니라 단기 시계에서도 성장세가 둔화되고 경기침체 발생 확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한은의 통화긴축정책이 사실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금리인상 무용론’이 제기된다. 긴축정책에도 대출금리가 낮아지는 상황이 이어지면 결국 시중 유동성을 줄여 물가를 낮추는 통화정책의 효과가 반감된다는 것이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시중금리가 낮다보니 대출을 받아 투자하거나 소비를 늘리고 있는데 한은의 목표만큼 물가가 내려가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그만큼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는 통화정책의 신뢰성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한은의 긴축으로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이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을 기준금리로만 해결하려다 보니 경기가 침체되고 시장금리와 갭이 생기는 것”이라면서 “금리를 더 높이면 오히려 비용 경기 침체라는 비용만 늘어나고 금융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금리 엇박자가 자칫 금융시장 불안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커진 데다 시장금리와의 격차도 벌어지면 환율이 불안정할 수 있고 이러한 신호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인식되면 금융시장 불안을 촉발할 수 있다”며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같은 지적에도 정부는 금융당국의 기조와 통화정책 간의 충돌이 없다는 입장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대출금리나 이런 쪽에서 원가 인상 요인이 있다고 제품 가격에 100% 반영하지는 않는다”면서 통화정책과 금융당국의 정책이 엇박자라는 데 반대 의견을 내세웠다.
지난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관련 질문에 대해 “최근 통화량 추이나 이자율 추이를 보면, 시장금리는 상승 국면에 있고, 통화정책이 발휘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며 “소비자들이 고통받는 것 자체가 통화정책 효과의 발현”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 또한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당시 “기업과 가계가 높은 금리를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통화정책은 작동하는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