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1년 점수 ‘낙제’
총선 D-1년 “민생경제 유능함 입증해야”
민주주의 최대 장애물 ‘불평등’
정태호 민주연구원장은 정책과 정무, 양 날개를 갖춘 ‘만능(萬能)통’의 전형이다. 김대중 대통령 인수위 행정관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 정무기획 비서관·정책조정 비서관·기획조정 비서관·대변인 등 정무·정책 분야 청와대 요직을 두루 거쳤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는 정책기획비서관과 일자리 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하며 상생형 지역 일자리인 ‘광주형 일자리’ 탄생시켰다. 그런 그는 지난해 12월 30일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해 당의 2024년 총선 전략 수립이라는 임무를 맡고 있다.
‘학우’의 ‘학’자만 언급해도 사복 경찰이 튀어나오던 서울대 82학번 그 시절 “노동법 한 줄 바꾸는 게 데모 백번보다 나을 수 있다”라는 신념 하나로 정치에 입문했던 그는 여전히 ‘힘없고 백없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정치의 목적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나지막이 말하던 그는 “‘정태호 때문에 그래도 뭔가 좀 해결됐네’라는 소리를 들으면 정치하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됐다고 본다”며 담담히 말했다.
뇌는 차가워도, 마음은 여전히 뜨거운 정 원장은 1년도 채 남지 않은 총선의 시험대에 올랐다. ‘성과내는 정치’를 의정 활동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그는 “좋은 정책으로 국민 신뢰를 확보하겠다. 이것이 선거 승리의 요체”라고 장담했다. 본지는 지난 17일 인터뷰를 통해 윤석열 정부 1년 평가와 민주당의 총선 전략 등을 들어봤다.
정 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1년 평가에 ‘낙제점’을 줬다. 그는 10일 발표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조사를 인용하며 “윤 정부 1주년 종합평가 결과, 100점 만점에 21.16점이었다”며 “21.16점이면 학점으로도 F학점인데, 낙제”라고 평가했다.
분야별로는 “정치가 ‘민주주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 원장은 “권력 사유화는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를 1년간 만나지 않는다는 건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라며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가 만난다고 해서 곧바로 답을 내거나 합의에 이르진 못할 수 있지만, 그 만남만으로도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데 국민이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제에서는 ‘최악의 성장률, 최악의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외교에서 기억나는 건 ‘굴욕외교’밖에 없다”며 “사회적으로도 이태원 참사처럼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란 회의를 떠올리게 했다”고 지적했다.
낙제점의 원인으로는 ‘시대 역행적 국정 운영 철학’과 ‘실종된 정책’을 들었다. 정 원장은 “전문가들은 시대에 역행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예를 들어 탄소중립은 핵심 글로벌 아젠다인데 재생에너지 비중을 줄이는 방향으로 간다거나 노동 문제도 사회적 타협이 중요한 과제인데 노동자를 범죄자 집단화하는 그런 모습 등이 그렇다”며 “국민들도 ‘이 정부는 뭐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추어같다’가는 평가를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민주당과 민주연구원은 최근 ‘윤석열 정부 1주년 평가 연속 토론회’에서도 보이지 않는 정책성과를 지적했다. 구체적으로는 중소기업 정책 실종과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시급하다고 봤다.
정 원장은 “중소기업 정책을 보며 느꼈던 건 ‘한 게 없어 평가도 못하겠다’였다”며 “윤 정부 집권 후 1년 국회 운영을 봐도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정부‧여당 측에서 뭐 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뭘 하자고 해야 정책적으로 갈등하다 통과되더라도 그걸 가지고 평가를 하는데 평가할 대상(기준)조차 없는 것, 바로 이게 가장 큰 문제”라고 평가했다.
중소기업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창업국가’로 커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경제의 역동성, 경쟁력, 미래 산업으로의 진출에서 제일 중요한 건 신산업에서의 창업과 벤처 경쟁력”이라며 “글로벌 벤처를 육성해야 하는데, 이 정부에선 이전 정부에서 잘 하고 있던 것도 없애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이번 정부에서 예산을 줄인 ‘모태펀드’”라고 지적했다. 정 원장은 “세계 경제가 어려우니 이럴 때일수록 재정을 통해 창업 분위기를 이어가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다”며 “대기업은 감세해주고, 유니콘 기업을 키워내던 모태펀드 예산은 줄이고”라고 덧붙였다.
청년 일자리 정책도 역행하긴 마찬가지라고 봤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일자리 없는 성장 시기에 접어들었는데, 공공부문 일자리는 줄이고 그나마 채용이 늘어날 수 있는 벤처‧창업 부문의 예산은 줄여서 창업 붐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청년 맞춤형 일자리 정책이 필요한데, 사실상 그런 것들이 전혀 없다”고 평가했다.
윤 정부의 무(無)성과를 지적한 정 원장은 민주당의 내년 총선 승리도 ‘민생경제’ 성과에 달렸다고 봤다. 정 원장은 “핵심은 앞으로 1년, ‘민생경제 유능함’을 입증해내는 것”이라며 “정부가 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좋은 정책으로 대안을 제시해 국민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윤 정부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민주당이 야당으로서 신뢰와 희망을 줘야 표심이 움직일 거라는 것이다.
실제 민주당은 올해 초부터 ‘긴급 민생 회복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등 민생을 강조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9가지 민생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긴급 민생 회복 프로젝트를 소개했고, 2월 난방비 문제에서는 민주당이 정부 정책 방향을 바꾸는 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당은 양곡관리법을 추진하고, 민생 현장 찾기에 집중했다. 정 원장은 “하나의 원인을 짚기는 어렵지만, 3월 이후 여론조사 지지율도 많이 올라갔다”고 짚었다.
무당층을 잡기 위한 전략도 결국엔 ‘민생 전선 확대’라는 입장이다. 정 원장은 “민생의 관점에서 실제 지역으로 가보면 국민들은 하루하루가 힘들고, 정치는 동떨어진 것 같다고 느낀다”며 “결국 그런 국민의 삶을 잘 지켜주는 민주당, 유능한 민생 경제 정당이 되면 중도층도 우리에게 다가올 거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청년 세대 공략을 위한 정책도 고민 중이다. 그는 “지금까지 반응이 좋았던 ‘천원의 아침밥’, ‘학자금 지원’ 등이 있지 않았냐”며 “대학생이나 대학 졸업생 대상 정책들이 많이 나왔다면 또 직장인 청년, 대학을 다니지 않는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준비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82학번인 정 원장은 대학 입학 후 광주민주화 운동을 알게 되면서 노동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두 번이나 감옥에 다녀왔을 정도로 민주 투사였지만, 어느 순간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원장은 “‘우리의 요구가 제도화되지 않으면 한계가 있구나. 노동법 한 줄 바꾸는 게 데모 백 번 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며 “실제로 변화라는 건 정책이 만들어지고, 그 정책이 문화로 자리잡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해진 그의 의정 활동 구호는 ‘성과 내는 정치’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는 민주 정부에서 ‘정책통’으로 평가받는 그는 ‘광주형 일자리’를 성사시킨 당사자이기도 하다. 정 원장은 “광주 노동계의 제안으로 시작돼 1년 6개월 동안 현대자동차와 광주시, 노동계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증인’이자 ‘중재자’ 역할을 했다”며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던 각 당사자들이 마지막엔 같은 편이 돼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이 일을 성사시키자는 의지를 모았다. 이게 사회적 타협이구나라는 걸 느꼈다”고 회상했다. 현대차가 당시 광주에 지었던 공장은 23년 만에 국내에 지은 공장이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정책에 몰두하면 늘 주목받는 건 아니지만, 꾸준히 하면 정책이야말로 세상 변화를 만드는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며 그가 정치를 하는 이유도 “‘정태호 때문에 힘없고 뒷배 없는 사람도 뭔가 해결했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또 자신이 초선이고, 이 대표와 특별한 인연이 없는데도 민주연구원장이 된 것 역시 “정책에 몰두하자는 의미”였다고 전했다.
이러한 정 원장이 주목한 민주주의 위기는 ‘불평등’이다. 그는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은 ‘국가권력 사유화’와 그로 인한 ‘다양성 위축’ 문제 그리고 ‘사회경제적 불평등 심화’가 있다”며 “그중에서도 불평등이 가장 큰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후, 재난뿐만 아니라 디지털 전환으로 노동 형태와 질, 관계가 모두 변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불평등 문제는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정 원장은 “시대적 전환기에 있어 미래를 생각한다면 당이 관심을 가져가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민주연구원은 매년 ‘불평등 보고서’도 낼 계획이다. 정 원장이 지난해 12월 30일 민주연구원장 취임 후 처음으로 발표된 보고서 주제도 불평등이었다. 그는 “취임 전부터 민주연구원에서 연구하던 주제였는데, 개인적으로도 이 부분이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할 거라고 보기 때문에 앞으로 매년 불평등 보고서를 낼 것”이라고 예고했다. 불평등 현실을 분석하고, 당 차원에서 필요한 정책과 입법을 만들어 그 결과로 불평등 현실이 얼마나 시정됐는지를 계속해서 추적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