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이주에 인맥 단절, 다시 고립된 자립준비청년 [뿌리 없는 청춘]

입력 2023-05-22 06:00 수정 2023-05-2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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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도권 양육시설 도심과 멀어
취업 등 보호종료 후 외톨이 전략
"관계망 복원·지역정착 지원을"

인천 소재 양육시설에서 자란 자립준비청년(옛 보호종료아동) 박강빈(26·남) 씨는 보호종료 후 경기 화성시를 거쳐 서울 동대문구로 이주했다. 사유는 취업이었다. 박 씨가 머물던 시설은 인천에서 벽지(僻地)였다. 지역에 일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박 씨와 함께 지내던 친구들도 보호종료 후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친구들과 연락도 뜸해졌다.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됐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오롯이 박 씨의 몫이었다.

자립준비청년은 아동양육시설이나 공동생활가정,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다가 만 18세(보호연장 시 만 24세)가 돼 독립한 청년들을 뜻한다.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총 1만2256명이 보호종료됐다. 이 중 4544명이 박 씨와 같은 양육시설 출신이다.

본보가 지난달부터 자립준비청년 6명을 심층인터뷰한 결과, 시설 출신 자립준비청년들이 겪는 공통된 문제는 비자발적 지역이동에 기인한 대인관계의 파편화였다. 비수도권 양육시설 상당수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탓에 지역 내 진학·취업 여건이 좋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자립준비청년들의 지역사회 정착이 어렵다. 이주지역은 성적, 진로, 기타 환경에 따라 제각각이다. 장인우(26·남) 씨는 출신지역인 전북 전주시에 정착했으나, 친구·동생들이 지역을 떠났다. 이 밖에 ‘양육시설 출신’이란 꼬리표를 떼고자 보호종료와 함께 출신지역을 떠나는 경우도 많다.

흩어지는 과정에서 이들의 관계망은 와해된다. 정서적으로 ‘기댈 곳’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주지역엔 모르는 사람뿐이다. 정착 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그 결과는 외로움과 고립감, 부정응이다. 당사자 위원으로 아동정책조정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에 참여 중인 신선(31·남) 민간위원은 “인터뷰했던 친구들을 보면 고등학생 때 취업했으나 적응에 실패해 일을 쉽게 그만두고, 또 지역을 옮겨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게 반복되면 연락이 끊기고, 적극적이지 않은 친구라면 고립과 방치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정부는 자립준비청년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2021년 자조모임인 바람개비 서포터즈를 조직하고, 지난해에는 바람개비 서포터즈 활동을 지원하고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사후관리를 제공하는 자립지원 전담기관을 설치했다. 자립수당 등 현금 지원도 대폭 확대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지난달 발표한 ‘아동정책 추진방안’에 따라 자립수당과 자립정착금을 추가 인상할 계획이다.

그간의 정책에 대한 당사자들의 평가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다만, 일부 정책에 대해선 개선·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관계망 복원, 지역사회 정착 지원이 대표적이다. 경제적 지원이 생활고 등 ‘드러난’ 문제에 대한 처방이라면, 요구되는 정책은 ‘근본적’ 문제에 대한 처방이다. 그간 ‘뿌리가 빈약한 나무를 쓰러지지 않게 지지하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론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도록 돕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게 자립준비청년들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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