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장기 저성장 국면 진입
투자매력 제고할 여건마련 ‘시급’
일본이 드디어 ‘잃어버린 30년’에서 탈출하려는데 한국이 ‘잃어버린’이라는 불길하고 암울한 타이틀을 물려받을 조짐이다.
올해 우리 경제와 시장을 살펴보면 가장 풀기 힘든 수수께끼가 나온다. 경기침체 우려에도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 금융기구가 줄줄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을 상향 조정하는데 한국만 주요국 중 거의 유일하게 성장률 전망이 계속 낮춰지고 있다.
OECD는 지난주 세계 성장률 전망을 종전의 2.6%에서 2.7%로 올렸지만, 한국 전망은 1.6%에서 1.5%로 내렸다. 2021년 12월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2.7%로 제시한 이후 지금까지 무려 다섯 번이나 낮춘 것이다.
반면 일본 경제와 시장은 순항하고 있다. 지난주 나온 일본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 수정치는 전분기 대비 0.7%, 연율로는 2.7% 각각 증가해 5월 속보치인 전분기 대비 0.4%, 연율 1.6% 증가에서 크게 개선됐다. 한국은 1분기 GDP가 전분기 대비 0.3% 증가에 그쳐 일본보다 못한 성장세를 나타냈다.
시장을 살펴보면 코스피지수는 올해 약 17% 상승하면서 비교적 선전하고 있지만, 이웃 일본증시 벤치마크인 닛케이225지수가 25% 뛰면서 연일 33년래 최고치를 경신하는 것에 비하면 맥이 빠지는 모양새다. 최근 1년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코스피는 간신히 1년 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닛케이는 14% 올라 그 차이가 더욱 극명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주춤하는 이유로 여러 가지를 들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말 저출산·고령화와 노후빈곤 문제 등을 들면서 “한국이 이미 장기 저성장 국면에 들어왔다”며 구조개혁을 주문했다. IMF는 긴축 정책에 따른 선진국의 소비 부진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에 따른 경제 충격이 제조업,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유는 일본에도 해당되는 것이 아니던가. 왜 같은 상황에 처했는데 세계 3위 경제국인 일본의 성장세가 우리를 웃돌고, 워런 버핏은 일본 기업을 극찬하며 투자를 늘리겠다고 ‘주식회사 일본’ 홍보 대사로 나서고 있는데 우리는 이 모양 이 꼴이 됐는가.
어떻게든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한국에서 재연되는 일을 막도록 정부와 기업은 물론 국민이 똘똘 뭉쳐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한번 ‘잃어버린’이라는 수렁에 빠지면 탈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일본에서 1980년대 말의 버블이 꺼지고 장기 불황이 시작됐을 때는 ‘잃어버린 10년’이었지만 금세 20년이 되고 급기야 30년이라는 말까지 붙게 됐다. 닛케이지수가 3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30여 년간 증시가 예전 전성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과 동의어다. 게다가 일본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던 버블의 추억이라도 있는데 우리나라 국민은 그런 호시절에 대한 기억도 없이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진다면 얼마나 슬플 것인가.
저출산·고령화와 인구 감소 등 장기적인 구조적 문제에 대해 해법을 찾는 것 이외에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경제와 시장을 신뢰하고 낙관할 수 있도록 투자에 매력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이 올해 새롭게 ‘부활의 노래’를 부른 배경에는 버핏을 필두로 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복귀가 있었다. 불확실한 세계 경제 상황에서 일본의 안정성이 주목받은 것이다.
여기에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도 결실을 맺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과거 주주환원에 소극적이었던 일본 기업들이 이제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을 기록적으로 늘리고 있고 순환출자 등 고질적인 문제도 해소되고 있다”고 칭찬했다.
버핏은 2007년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한국은 유망한 제조업 국가이고 증시는 세계 다른 곳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지금의 절망과 불확실성 대신 이런 찬사를 되찾도록 정부와 기업, 국민이 삼위일체가 돼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