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한대요” ‘주 4일제’ 확산할 수 있을까 [이슈크래커]

입력 2023-06-1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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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시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시스)
삼성전자가 이달부터 월 1회씩 금요일에 쉬는 근무제를 시작합니다.

13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달부터 ‘월중휴무’를 시행합니다. 매달 월 필수 근무 시간(160~168시간)을 채운 직원이라면 월급날인 21일이 속한 주 금요일에 자유롭게 쉴 수 있는 건데요. 해당일이 휴일일 경우, 직전 주 금요일에 휴일이 적용된다고 합니다. 4조 3교대 근무 생산직 등을 제외한 직원 대부분이 이른바 ‘쉬는 금요일’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휴무를 쓰면 해당 주는 ‘주 4일 출근’이 되는 거죠.

앞서 삼성전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4~5월 두 달간 육아 부담이 있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주 4일 출근을 일시 허용한 바 있는데요. 이번 ‘월 1회 주 4일 근무제’는 삼성전자가 4월 공지한 올해 노사협의회 결과에 포함된 내용입니다. 노사협의회는 회사를 대표하는 사용자 위원과 직원을 대표하는 근로자 위원이 참여해 임금 등 근로조건을 협의하는 기구죠.

일주일에 4일 일하는 주 4일제는 이미 일부 기업에서 시행하고 있거나 추진 중인 제도입니다. 삼성전자는 월 1회로 부분적 주 4일제를 시행하는 셈이지만, 이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코스피 시가총액 부동의 ‘1위’ 기업인 만큼, 삼성전자의 근무제가 재계의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시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시스)
삼성전자, 재계 표준 역할…수평 호칭·직급 단순화도 확산

그간 삼성전자의 경영혁신 사례는 재계의 표준 격이었습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16년 말 직원 간 수평 호칭을 골자로 하는 인사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는데요. 이듬해인 2017년 3월부터 직원 간 ‘○○님’, ‘프로’, 영어 이름 등 수평적인 호칭을 자율적으로 사용해왔습니다. 여기에 직급 단계는 기존 7단계에서 ‘CL1~CL4’ 4단계로 단순화했죠.

이후 LG전자도 그해 7월 기존 5단계인 사무직 직급을 3단계로 축소, 기존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을 사원-선임-책임으로 변경했습니다. 대리·과장은 선임으로, 차장·부장은 책임으로 통합했죠.

현대차그룹은 2019년부터 5단계였던 직급을 ‘매니저’, ‘책임매니저’ 등 2단계로 축소·통합하고 승진 연차를 폐지했습니다. 현대중공업그룹도 과장, 차장, 부장의 구분을 없애고 ‘책임’ 직급으로 일원화했죠.

또 삼성전자는 올해 2월부터는 수평 호칭 제도를 기존 직원에서 경영진과 임원으로까지 확대했습니다. 회장이나 사장, 팀장, 그룹장 등 직책과 직급을 부르는 것은 금지되고 영어 이름이나 이니셜, ‘○○님’을 사용하게 한 건데요. 이에 따라 삼성전자 임직원은 이재용 회장도 ‘회장님’이 아닌 영어 이름인 ‘Jay’나 이니셜인 ‘JY’, 혹은 ‘재용님’ 등으로 불러야 합니다. 이는 공식 석상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죠.

삼성전자의 이 같은 행보는 이 회장이 강조하는 ‘변화에 유연한 조직문화’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 회장은 지난해 6월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좋은 사람을 모셔 오고 조직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문화를 만들자”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수평 호칭, 직급 단순화에 이어 50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임원 자리에 30대 상무·40대 부사장이 대거 발탁되는 등 경영선에 변화가 두드러졌습니다.

삼성전자의 월중휴무도 조직문화 개선 일환에서 마련됐다는 분석입니다. 직원들에게 자율성을 주면서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하기 위함이라는 거죠.

삼성전자의 새로운 근무제가 산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기대가 높아지는 상황입니다. 국내 정규직만 12만 명으로 한국 최대 규모의 임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만큼, 월중휴무가 확산하는 도화선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가 나오는 겁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주 4일제’ 어떤 영향 주나 보니…“기업 성과·생산성·직원 복지 긍정적 효과”

사실 근로 시간 단축을 위한 시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뤄져 왔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유치원 교사, 회사원, 사회복지사, 병원 종사자 등 다양한 직군을 대상으로 35시간 주 4일제를 시범 운영하는 실험이 이뤄졌습니다. 연봉은 똑같이 유지하고 불필요한 회의, 휴식 시간 등을 줄여 업무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는데요. 그 결과 생산성은 비슷하면서도 근로자들의 스트레스와 번아웃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아이슬란드 기업의 약 85%가 주 4일제를 실시하고 있죠.

당시 뉴욕타임스(NYT)는 “아이슬란드의 실험은 성공으로 결론 났다”며 “참여한 근로자는 기존의 성과와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았고, 직장에서 더 나은 협업을 이뤘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영국 싱크탱크 ‘오토노미’ 등은 케임브리지·옥스퍼드대, 미국 보스턴대 연구진과 협력해 지난해 6월부터 70개 기업의 근로자 3300명을 대상으로 주 4일제 시범 운영을 진행했습니다. 근로자들은 6개월간 임금 삭감 없이 평소 근무 시간의 80%만 일했지만, 100% 생산성을 유지했죠.

설문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업과 근로자 모두 만족한다고 응답했습니다. 기업은 전반적인 효율성과 생산성에 만족했고, 근로자 대부분은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았으며 스트레스가 개선됐다고 답했죠.

코로나19 팬데믹의 확산으로 주 4일제 시도는 점차 확대됐습니다. 지난해 미국과 아일랜드에서는 자원한 33개 기업을 대상으로 6개월간 주 4일제를 시범 운영했습니다. 영국도 70개 기업을 대상으로 이를 시범 운영했는데,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습니다. 미국과 아일랜드는 주 4일제가 기업 성과와 생산성, 직원 복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냈고, 영국에서도 참여 기업 중 86%가 주 4일제를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했으며 시범 운영이 끝난 후에도 이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노비도 대감집에서”…주 4일제 확산 기대감도 ↑

삼성전자의 월 1회 금요 휴무제는 이달 23일 금요일부터 시행됩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상에서는 뜨거운 반응이 나왔습니다. ‘노비를 하더라도 대감집에서 해야 한다’는 댓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털 사이트 기사에 이어졌죠.

다만 일률적인 유급 휴일이 추가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월 필수 근무 시간을 모두 충족해야만 휴무를 신청할 수 있는 만큼 실제 근무 시간에는 별 차이가 없을 거라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관건은 삼성전자가 산업계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이미 SK하이닉스 등 SK 주요 계열사에서는 근무 시간을 채웠을 경우 한 달에 한두 번 주 4일제로 일할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2주간 80시간 이상 일한 직원은 매주 셋째 주 금요일, 연차 사용 없이 쉴 수 있게 하는 ‘해피 프라이데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죠. 이외에도 카카오게임즈 등 IT 업계에서도 주 4일제, 혹은 주 4.5일제를 시행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는 근로자가 근무 시간을 스스로 설계, 휴무를 정할 수 있으면서도 기본 연차를 그대로 사용해 개인 시간 활용도, 업무 처리도 더욱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도입에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대기업, 공공기관 등 비교적 제도가 잘 마련된 곳에서는 시행할 수 있지만, 법정 근로 시간(현 주 52시간)도 보장받지 못하는 사업장에서는 시행 가능성이 작을뿐더러 시간 단위로 근무량을 측정하는 서비스업 등 특정 산업에서는 오히려 임금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기 때문입니다. 하루 2교대나 3교대로 종일 공장을 가동하는 제조업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급하게 도입했다간 노동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죠.

세계 각지에서 근로 시간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주 5일제가 대세인 상황. 그러나 삼성전자가 월 1회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오랫동안 노동계의 이슈로 자리해 온 주 4일제 시행 논의도 점차 활발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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