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개인투자자, 거참 귀찮죠?

입력 2023-06-14 10:24 수정 2023-06-1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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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형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는 ‘종목토론실’이 있다. ‘네이버 증권’에서 상장사 이름을 클릭하면 볼 수 있는 카테고리다. 해당 상장사 종목을 산 사람, 판 사람, 버티는 사람이 한 데 모인 곳이다. 이름은 ‘토론실’이지만 투자자들이 답답한 마음을 글로 풀어내는 ‘해우소’에 가깝다. 어떤 이는 장밋빛 전망을 얘기하고, 또 다른 이는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은어)’ 현실을 한탄한다. 토론실에 폐장 시간은 없다. 1분 단위로 끊임없이 글이 올라온다. 1페이지당 게시되는 글은 총 20개. 한 주를 시작하는 이번 주 월요일(12일)에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의 종목 토론실에는 어림잡아 65페이지 넘는 글이 올라왔다. 단순 계산해도 1300개 글이 달렸다.

응석받이 취급 받는 개인투자자…제도 개선 과정에서는 논외 대상

작년 말 기준 개인투자자 규모는 약 1424만 명이다. 20세 미만도 75만여 명, 80세 이상도 23만여 명이나 된다. 주식시장에도 ‘노소(老少)’가 있다.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연령대는 40대(326만여 명)다. 나이, 성별, 지역, 주식 소유 규모 등 투자 유형도 천차만별이다. 한 종목만 가진 투자자(소유자)도 444만 명(법인, 외국인 포함)이나 된다.

투자자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쏟아져 나오는 목소리도 제각각이다. 피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현수막을 들고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앞에서 목청을 높이기도 일쑤다. 이들을 보고 누군가는 자기책임원칙도 모르는 투자자라고 혀를 찬다. ‘글로벌 스탠다드’, ‘선진국’이란 잣대를 들이밀며 수준이 떨어진다고 질타한다.

이런 시선은 정부의 제도 개선 과정에도 어느새 녹아들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회계제도 보완방안’을 두고 금융당국 출신은 “기업, 회계법인 입장은 보이는데, 투자자는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회계는 숫자로 기업을 상태를 알려주는 알림표다. 복잡한 용어와 수천억 원, 수조 원의 돈이 오가는 전문 영역이다. 회계법인이란 전문가에게 기업의 회계 진단을 맡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정행위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 기업의 재무적 투명성을 강화하려는 이유의 귀결점은 투자자 신뢰를 얻기 위해서다.

그러나 투자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하겠다는 본질은 흐릿해지고 ‘기업 vs. 회계법인’의 입장차로만 얼룩졌다. 이런 상황을 두고 혹자는 “비용은 기업이 부담하고, 리스크는 회계법인이 부담하고, 그 혜택은 시장과 투자자가 본다”고 표현했다. 금융당국 출신이 우스개 소리라며 “병원(회계법인)에 건강검진(회계관리)을 받고 얼마만큼 건강한지를 가늠하게 하는 제도인데, 정부가 지정한 병원에서 받는 게 아니라 환자(기업)가 편한 병원으로 가서 건강검진 받으란 것”이라고 비유한 얘기를 흘려들을 수 없었다. 가랑비에 옷자락이 젖듯이 1400만여명 투자자는 어느새 억울함만 호소하는 응석받이가 됐기 때문이다.

‘서학개미’ 증가한다는 건, 투자자보호 인식도 높아진다는 것

물론 투자자는 자기책임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주식시장이 마냥 돈을 불려주는 곳이 아니란 걸, 피·땀·눈물이 한 데 모인 내 돈을 앗아갈 수 있는 곳이란 걸 알아야 한다.

동시에 정부와 기업도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우리나라 개인투자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시장에서 돌아야 할 돈이, 우리나라 기업에 투자해야 할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안타까워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서학개미가 증가한다는 것은 시장에서 얘기한 ‘글로벌 스탠다드’ 경험치가 쌓인다는 것이고, 이는 곧 투자자보호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도 높아진다는 의미다.

정상진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13일에 열렸던 ‘내부회계관리제도 실효성 제고방안’ 세미나에서 이 점을 언급하며 일침을 가했다. 정 본부장은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에 투자해 본 경험이 누적돼 있고, 미국의 투자자 보호와 스탠다드에 익숙해지다보니 우리나라의 투자자보호에 대해 직접적인 실망감이 있다. 이런 현상이 장기화되면 투자자들이 국내 시장을 이탈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대 사기극으로 치부되는 의료기기 스타트업 ‘테라노스’에 대한 금융 ·사법당국의 조치(금융감독원 작년 4월 조사자료)를 보면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회사의 수익 전망치를 아무 근거없이 과장한 것을 두고 증권거래법 등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해당 법에는 ‘증권매수자를 기망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다는 것이다. 미 법무부가 공소를 제기한 주요 혐의 중에도 ‘투자자 대상 기망행위’가 속해 있다.

투자자는 시장을 구성하는 축이다. 허위·악성 민원을 초래하고, 주식 시장 거품을 만드는 분란만 초래하는 이들이 아니다. 무조건 투자자의 위신을 치켜세워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주식 시장에서 기업 가치 제고를 논하고, 정부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외칠 때 투자자를 늘 염두해야 한다. ‘표심(票心)’에 달면 삼키고, 귀찮으면 뱉어내는 존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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