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식품업계 대놓고 압박…라면 이어 우윳값에도 영향주나

입력 2023-06-19 17:00 수정 2023-06-1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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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가격 조정 협상 진행…유업계도 정부 눈치

추경호 부총리, 라면 가격 인하 발언 파장
원부자재·물류·인건·광열비 등 인상 요인 복합적인데
물가 인상 책임 업계에 떠넘긴다 비판도

▲이달 11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시민들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달 11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시민들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라면 가격 인하 발언에 식품업계가 고민에 빠졌다. 정부의 압박이 기존 가격 인상 자제에서 제품값 인하로 확대되면서다. 특히 우유 원재료인 원유 가격도 조만간 인상될 것으로 보여, 유업계도 가격 인상을 놓고 정부 눈치를 봐야할 처지다.

업계에선 가격 인상 요인이 원부자재를 비롯해 인건비, 물류비, 광열비 등 복합적인데 정부가 물가 인상 책임을 업계에 떠넘기다 못해 책임지라는 것이라며 당혹해 하고 있다.

19일 유업계에 따르면 낙농진흥회는 9일부터 소위원회를 구성해 원유 기본 가격 조정 협상을 진행 중이다. 소위원회가 가격을 결정하면 낙농진흥회 이사회 의결을 거쳐 그해 8월 1일부터 인상분이 반영된다.

원유 생산자와 수요자는 통계청이 매년 1회 발표하는 전년도 생산비를 기준으로 당해 연도 원유가 격이 결정하는데, 올해는 시장 상황도 반영된다. 이에 따라 올해 원유 가격은 리터(ℓ)당 69원~104원 내에서 인상될 전망이다. 현재 리터당 996원을 기준으로 협상에 따라 원유 기본 가격 인상률은 최소 6.9%에서 최대 10.4% 수준에서 결정될 수 있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 우유는 물론 아이스크림, 빵, 우유가 들어가는 커피류 등의 가격 인상도 불가피하다. 지난해에도 원유 기본 가격이 49원 오르자 서울유유협동조합은 제품 가격을 평균 6% 올렸고, 매일과 남양유업은 흰 우유 출고가를 각각 8%씩 인상했다. 이후 커피전문점, 아이스크림 가격도 일제히 뛰었다. 우유 가격 인상이 전체 유제품 가격 인상을 불러오는 이른바 밀크플레이션이다.

다만 정부는 밀크플레이션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주요 식품류의 국산 우유 사용률이 낮아 원유 가격 인상이 가공식품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적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원유 가격이 인상되더라도 흰우유 등 유제품 가격이 과도하게 오르지 않도록 간담회 등을 통해 유업계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부 입장에 유업계도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게 됐다. 아직 원유 가격 인상폭이 결정되지 않았는데도 정부가 밀크플레이션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언급한 것은 유업계의 가격 인상을 미리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유업계는 아직 조심스럽다는 입장이지만 원자재 가격 인상은 제조사 입장에서 부담이라는 것이 공통적인 의견이다.

한 유업계 관계자는 “원유 가격이 오르면 제조사 입장에선 원자재 가격이 오른 것이라 어쩔 수 없이 (제품 가격도)인상해야겠지만 현재까지 정해진 게 없기 때문에 당장 어떻게 되겠다고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다른 유업계 관계자도 “내부적인 상황과 시장 상황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가격인상을)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라면이 진열돼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라면이 진열돼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현재 정부는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 억제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추 부총리는 한 방송에 출연해 “라면 가격을 내리라”고 발언했다. 지금 국제 밀 가격이 가격을 올릴 당시보다 50% 안팎으로 내렸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국내 주요 라면제조사들은 즉각 반응했다. 농심 관계자는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다각도로 (가격 인하를)검토하겠다”고 밝혔고, 오뚜기 관계자는 “(가격 인하에 대해) 논의된 부분은 없지만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양식품 관계자 역시 “현재 가격 인하 계획은 없지만 국민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여러모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식품기업에 대한 정부의 가격 관련 압박은 지난해 말부터 지속됐다. 추 부총리는 올해 2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주류)세금이 올랐다고 주류 가격을 그만큼 올려야 되느냐”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업계는 세금이 올랐는데 제품 가격은 제자리이면, 결국 기업 이익률은 그만큼 하락하는데 정부 눈치만 보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농식품부는 올해 초 외식업계 관계자들을 모아 외식 물가 안정 협조를 요청했고, 지난해 9월에는 식품업체 임원들을 불러 모아 물가 안정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일각에선 정부의 가격 통제가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가격 인상 요인이 다양한데도 정부가 물가 인상 책임을 업계에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당장 밀 가격이 떨어졌다고 해도 제조사는 제분사에서 밀을 사오기 때문에 제분사 가격에 현 시세가 반영되려면 최소한 5~6개월 정도 걸린다”며 “물류비·인건비·연료비 등 이런 건 다 올랐는데 밀 가격만 하락했다고 다 낮아지는 게 아니지 않냐”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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