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늦추려는 가해자의 逆신고 현실
구직급여 받고자 허위 신고 경우까지
제도적 결함 악용 차단…규정 보완해야
직장 내 괴롭힘 조사에 관한 법률 규정은 엄격하다.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고, 사용자는 신고가 접수된 경우 혹은 신고가 없었더라도 괴롭힘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사용자가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담한다. 만약 신고 근로자 또는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게 되면 징역 내지 벌금형의 형사처벌에 처해지게 된다.
법률이 이처럼 엄격한 규정을 두고 있는 건 많은 근로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을 밝히기 꺼려하고, 애써 용기를 내 신고하더라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던 현실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 신고가 아무리 많더라도 그 자체로 문제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사건들을 살펴보면 아무리 조사를 진행해도 직장 내 괴롭힘 등의 근거를 찾기 어려운 사건들, 즉 ‘허위 신고’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신고를 처리하느라 시간과 비용을 빼앗기다 보면, 오히려 진정한 신고 처리가 지연되거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문제도 생긴다. 특히 허위 신고가 단순히 몇몇 근로자의 악의나 부정직의 결과가 아니라 제도적 흠결의 결과일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선, 법률이 신고 근로자에 대해 징계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징계가 예상되는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징계를 늦추기 위해 허위 신고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가령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돼 이제 곧 조사가 예정된 근로자들이 흔히 취하는 조치는 역으로 피해자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는 것이다. 피해자를 신고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을 때에는 인사팀이나 감사팀이 조사 과정에서 괴롭힘을 했다고 신고하기도 한다.
신고가 아무리 경미하거나 근거가 없더라도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조사를 할 의무가 있고 신고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 결국 실무적으로는 모든 내부 조사가 완료돼 아무런 직장 내 괴롭힘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피해자의 진정에 의한 고용노동청 조사까지 완료돼 문제가 없었음이 확인이 된 이후에야 징계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다음으로 고용보험법에서 자발적인 이직에 대해서는 구직급여(실업급여)를 제한하면서도,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는 정당한 이직 사유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 역시 허위 신고의 유인이 될 수 있다.
근로자들이 재직 중에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퇴직하는 경우 적어도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직하면서 구직급여 수급 사유를 찾다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는 경우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근로자가 허위 신고를 하더라도 이를 제재하기가 쉽지 않다. 일부 허위 신고의 유인이 있더라도 이를 제재할 방법이 있다면 균형이 이뤄질 수 있지만, 현행법상 허위 신고에 대한 제재 방법이 뚜렷하지 않다.
흔히 형법상 무고죄를 생각하지만 무고죄는 공법관계에 적용되므로 사기업의 징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허위 신고를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징계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사업장도 많지 않은 편이다. 허위 신고 근로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으나, 회사가 근로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어렵다.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의 처리에 관해 비교적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으면서도 허위 신고나 신고 제도의 악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악용 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직장 내 괴롭힘 제도가 상당 기간 시행됐고, 허위 신고나 악용 가능성은 단순한 가능성을 넘는 현실이 됐다. 기업에서도 내부 규정을 정비해 대비하고, 법령에 의한 보완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