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앤인물] ‘김다르크’ 김은경, 마지막 강의서 강조한 ‘소비자보호’

입력 2023-06-22 10:52 수정 2023-06-26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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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소보처 설립 11년 이래 처음으로 임기 채워
임기 말 사퇴 압박 속에서 펀드사태 분쟁 조정 마침표
재해사망보험금, 보험사 지급 판례 이끌어 내기도
“‘을’에 대한 생각…스스로 보호 못하는 이들을 위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혁신기구 제1차 회의에서 김은경 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혁신기구 제1차 회의에서 김은경 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판례를 잘 살펴보세요. 사업자 편에 있으면 돈이 나오니깐 좋죠. 달달하죠. 그러나 소비자 없는 사업자는 없습니다.”

이달 14일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관 601호에서는 김은경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학기 마지막 강의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되기 하루 전이다. 김 교수는 이날 훗날 ‘정의의 저울’을 들 후배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소비자가 있어야 금융회사도 존재한다”, “절대 자존심을 버리지는 일은 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이다. 김 교수의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 사진에 있는 ‘Bleib bei dir’ 문구도 읊었다. 이 문구는 독일인들이 “초심을 잃지 말아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문장이다. 김 교수는 이날 ‘토이, 토이, 토이(toi, toi, toi, ‘힘내자’는 의미의 독일어)’로 강의를 마쳤다. 3시간의 학기 마지막 강의가 끝난 후 김 교수를 만났다.

사모펀드사태 끝까지 조사해…금감원 소보처 역할 정립

김 교수는 역대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이하 소보처장)으로서 유일하게 임기를 모두 채웠다. 금감원장이 바뀌고, 정권이 교체되는 변화 속에서 자리를 놓지 않은 배경에는 사모펀드 사태가 있다. 사모펀드 사태는 2019년에 발생한 대규모 환매 연기 사건이다. 사태가 발생한 이후 금융당국에서 수차례 보도자료를 발표하고, 학계에서는 논문을 냈지만 5대 사모펀드 사태(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이탈리아 헬스케어·헤리티지) 이외에 규모가 작은 사모펀드 환매 연기 상황까지 반영한 최종 피해 현황은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다.

김 교수는 헤리티지 펀드를 끝으로 5대 사모펀드 사태의 분쟁조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 교수는 당시를 회상하며 금감원 직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라고 했다. 자료도 불충분하고, 조사 방향을 바꿔야 하는 고민이 있을 때마다 직원들과 상호 믿음으로 종결할 수 있었다. 특히 김 교수가 독일 만하임대학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쌓은 지식과 네트워크는 헤리티지 펀드 분쟁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소보처장 임기 후반에 사퇴 압박 속에서도 펀드 분쟁을 종결하는 모습을 보고 혹자는 김 교수를 ‘잔 다르크’에 비유해 ‘김 다르크’라고 부르기도 했다.

김 교수는 “헤리티지 같은 경우는 자료를 모으는 데 있어서 제 역량이 중요했고, 또한 직원들이 잘 따라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말 신의 운이 따랐다”며 “소보처장직을 유지했던 원동력 중 하나도 헤리티지 펀드 사태를 마지막에 다뤘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직원들에 대한 고마움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헤리티지 펀드 조사 방향성을 두고 회의를 했을 당시 담당 팀장이 조사 방향을 바꾸지 않고 ‘처장님, 온대로 갑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용기가 생겼다”며 “저 혼자였다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작년 11월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헤리티지 펀드를 판매한 금융사에 투자원금(100%) 반환 결정을 내렸다.

소보처는 지난 2012년 금감원 내 준독립기구로 설립됐다. 그동안 소보처는 금감원 내에서 기피 부서였다. 주요 업무인 감독·검사·조사가 아니기 때문에 한직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교수를 필두로 소보처 내 분쟁조정담당국에서 사모펀드 사태를 마무리 짓고, 김 교수 역시 임기를 모두 채우면서 소보처에 대한 존재감도 달라졌다.

김 교수는 “여느 날 한 직원이 금융투자 시장이 옛날에는 그냥 만들어서 막 팔았는데 지금은 함부로 팔지 않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하더라. 일부러 지어서 얘기하는 거냐고 물으니깐 상품을 함부로 만들지 않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했다”라며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 부분에 한해에서는 세상을 바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자살보험금 논문으로 대법원 ‘보험사 지급’ 판례 이끌어내

김 교수는 재해사망보험금(일명 자살보험금) 논문으로 대법원의 ‘보험사 지급’ 판례를 이끌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금감원 보험 담당 국장이 재해사망보험금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며 김 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날 마지막 강의에서도 김 교수는 재해사망보험금 사례를 설명하면서 잘못 만들어진 약관의 책임은 보험사가 져야한다면서 당시 소비자들의 입장에 섰을 때 어려움을 전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대법원의 보험사 지급 판결을 끌어냈던 요인 중 하나로 소비자들의 보험 약관 이해도가 현저하게 낮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일반인 730명을 포함해 10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약관의 이해도가 1%대 수준으로 나왔다”며 “이런 결과 등으로 보험사 지급이라는 대법원 판례를 끌어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금권(金權)에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일련의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판례였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도 “보험 약관은 보험자에게는 상품의 구성내용으로서 시장에서 보험자의 수준을 판단 받는 법적 상품”이라며 “이것이 잘못 만들어진(또는 이것을 잘못 만든) 그 책임은 전적으로 보험자에게 있다. 그 잘못 만들어진 약관을 오랜 기간 그대로 방치한 채 탐지하지 못한 책임도 역시 보험자에게 있다”고 서술했다.

‘을’에 대한 생각…가족의 응원으로 나아가

김 교수는 “스스로 보호하지 못하는 ‘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금감원 소보처장 시절에도 직원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징계위원회에 직접 참석해 직원의 징계에 대한 불충분 사유를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임원 사퇴에 대한 조직 안팎의 압박을 견뎌내고, 대형 금융회사를 상대로 분쟁조정을 마무리 지을 수 있던 배경에는 가족의 응원이 있다. 김 교수는 작고한 남편이 자신에게 해줬던 말을 회상하며 “예전에 남편이 저에게 사법시험보다 공부해서 널리 널리 일을 하라고 얘기하곤 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혁신위원장으로 후보에 올랐을 때도 김 교수는 “작은 아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엄마를, 누군가가 추천을 했다는 것은 사회가 요구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나의 롤모델이야’라고 얘기했을 때 감동받고,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김 교수가 올해 3월 소보처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기자와 나눴던 대화를 되뇌어 본다. “뭔가 세상을 바꿀 능력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양심은 있다. 그런 맥락에서 천재성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뭉근하게, 성실하게, 양심은 있는 자니까 그런 범위 내에서 멋지게 일을 해보고 싶다. 그게 또 어떤 일이 될 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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