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IRA 딜레마…미국 시장 독주냐, 탈중국 리스크 완화냐

입력 2023-06-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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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세부지침 해외우려기업 기준 미발표, 불확실성 커져
中 기업 전체 포함 시 탈중국 과제…美 시장 독주 기회일수도
견제 수위 조절 시 공급망 다변화 숨통…中 업체 우회 진출 부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추가 세부지침이 아직 발표되지 않은 가운데 국내 배터리 업체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IRA의 전기차 보조금 요건상 핵심 광물이나 부품을 조달해서는 안 되는 해외우려기업(FEOC)의 규정에 따라 국내 배터리 업계의 대응 방향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배터리 업체들은 IRA 추가 세부지침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3월 공개한 IRA 세부규정에서 FEOC로부터 조달한 핵심 광물이나 배터리 부품을 사용한 경우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다만 재무부는 당시 FEOC를 구체적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IRA는 미국 인프라법이 규정한 FEOC의 정의를 원용했다. 인프라법에서는 중국·러시아·이란·북한 정부의 소유와 통제, 관할에 있는 기업을 FEOC로 봤다. 문제는 IRA의 FEOC에 중국 기업 전체가 포함되는 경우다. 중국 광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을 새롭게 갖춰야 한다.

이미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IRA에 대응하기 위해 ‘탈(脫)중국’에 나섰다. 호주나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지역에서 광산을 운영하는 기업과 업무협약(MOU)을 맺는 등 공급망 다변화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국내 배터리 업체의 합작사가 중국 업체거나 중국 업체가 지분을 가진 업체인 경우가 많아 추후 발표될 FEOC 세부지침에 따라 제약받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최근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 FEOC의 정의를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투자의 불확실성을 피하고자 중국의 어떤 기업이 FEOC에 포함되는지 명확히 해달라는 요구다. 동시에 FEOC 규정을 만들 때 배터리 공급망 내 특유의 복잡함을 충분히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궈시안의 본사 모습. (출처=궈시안 홈페이지)
▲중국 상하이에 있는 궈시안의 본사 모습. (출처=궈시안 홈페이지)

최근에는 미국이 전기차 공급망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이 자국 중심으로 시장 재편을 시도하고 있지만 전 세계 배터리 공급망을 장악한 중국 없이는 배터리 생산이 어렵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IRA를 통해 자국에서의 생산을 늘리고, 전기차 시장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가진 미국 입장에서 중국을 100%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중국 지분이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강하게 나가면 배터리 원자재 수급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FEOC 세부지침에서 중국 자본의 지분 비율에 제한만 설정하는 방향으로 견제 수위를 조절할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 배터리 업계에서는 탈중국 부담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중국 기업과의 합작법인을 통해 배터리 소재를 조달해도 전기차 보조금 기준을 맞출 수 있어서다.

문제는 이 경우 중국 배터리 업체가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배터리 업체는 이미 IRA의 허점을 파고들며 미국에 우회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미국 미시간주에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인 중국 배터리 기업 ‘궈시안’의 사례다. 궈시안은 중국인이 설립하고, 중국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독일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 그룹이 최대 주주다. 사실상 중국 배터리 기업이지만 지분율만 충족하면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세울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IRA의 ‘딜레마’다. FEOC에 중국 기업 전체가 포함되면 한국 배터리 업체는 공급망에서 탈중국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중국이 배제된 미국 시장에서 독주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반면 중국 견제 수위가 조절되면 공급망 탈중국에서는 숨통의 트이지만 미국 시장에서 중국 기업과 경쟁해야 할 위험이 커진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배터리 업계에서는 중국의 미국 진출을 아예 막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며 “공급망에서 탈중국을 하는 건 비용이 많이 들고 어렵긴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처럼 큰 시장에서 가장 큰 경쟁국을 하나 배제한다는 것은 업계에 엄청난 이득이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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