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존재의 당위성 무너진 경차

입력 2023-06-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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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산업부 부장대우

국내 최초의 경차는 1991년 등장한 대우국민차 ‘티코’입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정부는 ‘국민차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요. 올림픽의 성공을 시작으로 이제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도 담았습니다.

다만 시장 초기에는 여러 기업의 출혈 경쟁을 막기 위해 진출 기업을 제한했습니다. 이 과정을 거쳐 일본 스즈키 기술을 가져온 대우조선(대우국민차)이 국민차 제조사로 선정됐지요. 정부와 기업은 서로 필요한 것을 조용히 주고받았고, 우여곡절 끝에 티코가 등장했습니다.

그렇게 30여 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대한민국 경차는 발전 대신 설 자리마저 위협받고 있습니다. 새 모델이 등장하면 반짝 시장이 커졌다가, 다시 원래 위축된 시장으로 돌아가는 걸 반복 중이지요.

먼저 제조사 입장에서 경차는 돈 되는 차가 아닙니다. 그저 정치권의 압력에 못 이겨 새 모델을 내놓고 새 공장을 짓습니다. 제네시스 1대의 영업이익이 쏘나타 4대와 맞먹는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경차는 100% 위탁 생산 중입니다. 현대차는 광주글로벌모터스에, 기아는 동희오토에 생산을 맡깁니다. 대기업 직원의 값비싼 인건비와 복지비용을 투입해 값싼 경차를 만들었다가는 도무지 남는 게 없기 때문이지요. 한국지엠이 직접 생산하던 스파크를 과감하게 단종한 것도 이런 배경 탓입니다.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쏟아부어 후속 모델도 개발하지 않습니다. 투자비를 뽑아내기 버거울 만큼 차 가격이 낮았습니다. 자연스레 후속이나 경차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고, 경차의 경쟁력은 다시 하락했습니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입니다.

수출도 쉽지 않습니다. 나라별로 경차 기준이 다르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잘 팔렸던 경차가 수출현장에서 경차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고객 입장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값싸고 연비 좋은 경제형 자동차라는 인식이 무너진 것인데요.

1990년대 경차는 1ℓ로 20km를 훌쩍 넘게 달린다며 광고했었지요. 차와 엔진이 작은 만큼 연비가 좋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에너지소비효율 시험방법 및 표기법 개정'이 시행된 이후 경차의 실제 연비가 10km를 갓 넘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경차 오너는 물론 국민적 공분도 일었습니다. 연비가 나쁘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을 몰랐던 것이지요.

실제로 현대차 캐스퍼 1.0 터보의 경우 공인연비는 1ℓ당 12.3~12.8㎞입니다. 준중형차인 아반떼(14.8~15.4km/ℓ)에도 못 미치는 셈이지요. 그뿐인가요. 내뿜는 탄소는 중형 혼합형 자동차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가격도 크게 올랐습니다. 티코가 200만 원대 가격을 앞세워 등장했으나 30여 년 사이 요즘 경차는 기본 가격만 1000만 원을 훌쩍 넘습니다. 법 개정에 따라 선택이 아닌 필수 옵션을 쓸어담다 보니 가격이 훌쩍 뛴 것이지요.

그뿐인가요. 준중형차와 중형차가 각각 윗급을 넘볼만한 크기로 덩치를 키웠지만, 경차는 여전히 차 길이 3.6m, 배기량 1000cc 규정에 묶여 있습니다. 그나마 차 길이와 엔진 배기량 기준을 소폭 개정한 게 이 수준입니다.

이 때문에 이제 경차에 대한 제도와 규정, 혜택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집니다. 제조사는 물론 구매고객으로서도 경차의 매력이 사라진 지 오래거든요.

물론 경차가 이 시장에서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해는 됩니다. 구매는 물론 유지 단계에서 누릴 수 있는 세제 혜택과 통행료 및 주차료 혜택이 적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데도 경차에 대한 혜택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동시에 시장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옵니다. 더는 경제형 자동차라고 부를 수 없는 경차가 심지어 탄소배출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에서 냉정하게 경차 '존재의 당위성'을 생각해 봅니다. 더는 경제적이지 않은 작은 차, 여기에 탄소배출마저 불리한 작은 차에 대해 다른 국민의 세금까지 쏟아부어 가며 세제 혜택과 유지 단계에서 혜택, 주차 혜택까지 줘야 할 명쾌한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그 이유를 찾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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