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문항 공개③] “모호한 킬러문항 기준에 오히려 ‘멘붕’”…사교육비 경감은 ‘의문’

입력 2023-06-26 17:17 수정 2023-06-2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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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대책 브리핑을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대책 브리핑을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교육부가 26일 내놓은 '사교육 경감대책'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 현장은 말 그대로 ‘멘붕(멘탈붕괴)에 빠졌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을 5개월 앞두고 터진 대통령의 '공정수능' 발언으로 출제지침 등에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나올 줄 알았더니 오히려 모호한 킬러 문항 기준을 내놓아 대입 준비를 하는 데 더 혼란스러워졌다는 목소리다.

이른바 ‘킬러 문항’ 논란에 대해 교육부는 이날 실제로 출제됐던 문제를 공개했다. 그러나 킬러 문항에 대한 명확한 정의조차 없었던 만큼 이번에 예시로 공개된 문항에 교육 현장은 혼란에 빠진 모양새다.

이날 교육부는 지목된 킬러 문항의 정답률 및 공식 오답률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교육부는 오답률 등 수치에 기반해 킬러 문항을 판단하기보다는 '공교육 과정에서 다룰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의 잣대로 쓴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전문가마다 킬러문항의 판단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교육당국이 애써 선정한 킬러 문항 기준 역시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청한 교육계 인사는 "수능 국어, 영어는 시험 범위 자체가 '교과서 범위 내의 다양한 소재와 지문을 이용한다'고 돼 있어 킬러 문항 판정 자체가 모호하다"며 "킬러 문항에 대한 논쟁은 계속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킬러문항 배제가 사교육 경감 대책?…‘풍선효과’ 우려

사실상 이번 발표의 핵심은 사교육비 경감대책에 있다. 그러나 킬러 문항 배제에 중심을 둔 이번 대책으로 사교육비가 경감될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최상위권은 킬러 문항 때문에 사교육에 기대는 경우가 많지만, 초고난도 킬러 문항을 배재하면 상대적으로 고ㆍ중난도 문항이 증가해 중위권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체감 난이도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중위권 학생들은 킬러 문항을 줄인 수능을 되레 어렵게 느낄 수 있어 더 많은 수의 학생들이 학원을 찾는 사교육 풍선효과 우려가 나온다.

결국 수능 킬러 문항 조정으로 사교육비 부담을 더는 건 효과가 크지 않아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사교육비는 자녀가 목표에 도달했다고 해서 멈추는 게 아니라 옆집 자녀가 더 잘하면 우리 집 사교육비를 더 지출하는 등 무한히 팽창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며 "학교 서열과 입시 경쟁이 원인인데 그 해법을 수능 킬러문항 조정으로 찾으려는 것은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교육을 잡기 위해선 교육 분야만이 아니라 교육 외적인 분야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교육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열과 대학 입시 체제, 노동시장의 임금·근로조건, 저출생 현상 등과 복잡하게 맞물려 있는데다, 결국 공교육의 질이 높아져야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공감대가 크기 때문에 이날 발표된 대책들은 여전히 근본 대책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픽 = 신미영 기자 win88226@)
(그래픽 = 신미영 기자 win88226@)

수능출제진 현장교사들로…영리행위 금지 방침

이날 교육부는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현장 교사들로 구성된 ‘공정수능출제점검위원회’를 신설, 수능 출제 단계부터 킬러문항을 걸러내기로 했다. 2025학년도 수능부터는 교사 중심으로 출제진을 구성하고, 수능 문항 정보도 추가로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교사를 중심으로 ‘공정수능평가 자문위원회’를 운영한다.

이 외에도 입시학원이 수능 출제경험이 있는 교사·교수에게 모의고사 문항을 매매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출제위원이 일정기간 수능 관련 강의·자문 등 영리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필요하다면 법적 근거도 마련할 계획이다.

학원 도움 없이 입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제도도 정비한다. 현장 교사 중심의 무료 대입 상담 등 ‘공공 컨설팅’을 실시하고, 논술·구술 등 대학별고사가 교육과정을 벗어나지 않도록 점검하기로 했다. 중·고교 교과 보충용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EBS 시스템도 개편한다. 유료 강좌인 ‘중학 프리미엄’을 무료로 전환하고, 수준별 학습 콘텐츠도 대폭 확대한다.

이 부총리는 "역대 정부를 막론하고 공교육 교육과정 내 수능 출제가 기본 원칙이었다"며 "그러나 지나치게 전문가와 공급자인 출제당국 입장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고 킬러문항이 출제된 것에 대해서 깊은 반성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부총리는 "아울러 미리 점검하고 준비해서 조금이라도 더 일찍 발표해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도 깊이 반성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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