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풍경] 동행

입력 2023-06-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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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세상을 떠났어요….” “네!?” “외출 후 집에 들어 갔는데, 방에… .” 중년의 여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어떤 형용사를 꺼내야 될지 막막하였다. 드라마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의사가, 뇌리를 울리는 한마디 위로의 말로 환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곤 했지만, 현실의 나는.

내게도 아들이 있다. 눈에 안 띄고, 내세울 것도 없는 그런 아들이지만, 내 존재의 이유이기도 한. 만약 내게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상상만으로도 전신의 신경이 흥분하고, 장기들의 기능이 멎는 것만 같은 공포와 절망이 몰려 왔다. 첫 면담인데, 우리는 말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간간이 눈물을 닦고, 가끔 나의 깊은 한숨 소리가 이어졌다.

두 번째 면담. 그녀는 자신의 가족사를 넋두리하듯 두서없이 꺼내 놓았다.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아들을 의지하며 살았다. 아들은 어렵게 취직한 후, 열심히 회사를 다녔다고 한다. 돈이 모이면, 유럽여행을 보내주겠다던 착한 아들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이런 일이 닥친 것이었다. 그녀는 울고 또 울었다.눈물은 마르지 않는 샘인 것마냥 계속 쏟아졌다. 나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십여 회의 면담(?) 후, 그녀는 외래에 나타나지 않다가, 두 계절 정도 지난 후 다시 나를 방문하였다.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선생님이 있어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조금은 강해진 그녀의 모습에 환한 미소로 답해주었다.

사업이 기울어서, 우울 무기력에 시달리던 한 남자가 내원하였다. “어느날, 운전하다가 이대로 핸들에서 손을 떼면 참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저도 수년 전에 힘든 일이 있었는데, 고속도로로 차를 몰고 가던 중에 그런 유혹에 빠졌던 적이 있었어요!” 우리는 묘한 동지의식에 빠져, 인생의 고뇌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면담을 마무리했다.

몇 달 후, 두 번째 방문한 그는‘그날 내 조언이 큰 힘이 되었다’고 감사함을 표시했다.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솔직히 치료자라 하지만, 나도 같은 호모사피엔스일 뿐이다. 옆에서 부상 입은 동료를 부축하며, 같이 험한 여정을 걸어나가는 것, 즉‘동행’을 하다 보면,어느새 상처가 치유되는 것인가 보다. 진료실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나는 겸연쩍으면서도 행복한 미소로 그에게 감사를 표하였다.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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