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부동산, 위협받는 서민 주거[서민 주거가 무너진다①]

입력 2023-07-04 07:00 수정 2023-07-0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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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와 역전세난으로 촉발된 서민 주거의 붕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서민과 청년층의 든든한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하던 전세시장이 종말을 고민할 정도로 무너지고 있고, 빌라와 다세대주택 시장도 고사 직전에 놓여 있다. 이에 본지는 해외 사례를 통해 배울 점과 교훈을 찾아보고, 전문가들을 통해 해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편집자주]

서민 주거가 위협받고 있다. 가파르게 오르던 집값이 떨어지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데 대부분의 재해급 위기가 그렇듯 서민이 가장 먼저 위태로운 상황에 몰렸다.

4일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저축이나 주식으로는 의미 있는 자산증식이 쉽지 않을 것 같아 갭투자에 나섰던 집주인은 역전세 파도에 부딪혔다.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또 대출을 받고 매달 수십~수백만 원의 비용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대출을 감당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급하게 집을 내놔야 할 판이다.

한국은행의 조사에서 현재 전세계약 중 절반이 넘는 102만6000가구(52.4%, 4월 기준)가 역전세 위험에 처했다. 작년 1월 25.9%에서 비중이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깡통전세 위험 가구 비중은 2.8%에서 8.3%로 확대됐다.

이런 집들이 쏟아지면 가뜩이나 침체된 부동산 시장은 더욱 깊은 수렁을 피하기 어렵고 사실상 집 한 채가 자산의 전부인 사람들은 앉아서 경제력이 무너져내릴 걸 지켜봐야 한다. 그에 앞서 세입자들은 혹시나 돈을 돌려받지 못할까 혹시나 내가 사는 집이 경매에 넘어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서민이 중산층으로 더 나은 집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하던 전세제도는 전세가기가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존재를 위협받고 있다. 전세 사기를 피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월세를 찾는 사람은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 중이다. 부동산정보제공업체 경제만랩이 서울부동산정보광장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1~5월 서울 주택 전·월세 거래 중 월세 비중은 51%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최대치다.

월세는 가처분 소득 감소로 이어져 더 나은 환경의 내 집을 찾아갈 시간을 지연시킬 수밖에 없다. 지갑이 얇아질수록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는 게 당연하다. 안 그래도 번 돈의 상당 부분을 은행 빚을 감당하는 데 쓰고 있는 상황이란 점을 생각하면 암울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행이 양정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으로 전체 가계대출자의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40.3%다. DSR이 100% 이상인 차주는 전체의 8.9%다. 평균적으로 연 소득의 40%가 원리금 상환에 사용되고 10명 중 9명은 번 돈을 전부 빚 갚는 데 쓰고 있다는 의미다.

'빌라 공포증'도 안정적 주거를 원하는 서민을 서럽게 만든다. 빌라는 깔끔한 신식의 주거환경을 원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서민에게 최선의 선택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 놓고 찾을 수 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빌라와 다세대주택을 믿지 못하면 무리해서 아파트를 선택하는 방법밖에 없다. 경제적 상황에 최대한 맞추려다 보면 출퇴근 시간과 편리한 삶을 희생하면서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야 한다.

실제로 비아파트 인허가는 반 토막 났다. 국토부의 올해 1~5월 비아파트 인허가 건수는 작년 동기보다 49% 줄어든 2만1292가구다. 수억 원 이상을 조달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살만한 집이 더욱 줄어든다는 뜻이다.

공공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다. 분양과 임대를 막론하고 공공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이번 정부가 들어선 후 1년간 공공분양주택 승인이 직전 1년과 비교해 40%가량 줄었다. 경실련은 20년 이상 저렴하게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장기공공주택은 국내 전체 주택의 4%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나마도 '휴거(휴먼시아 사는 거지)'와 같은 말이 드러내듯 '낙인효과' 때문에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공공주택을 선뜻 선택하기로 어렵다.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서민들이 주거불안에 시달리거나 월세 또는 주택담보대출을 감당하기 위해 수십 년간 일하고 은퇴 후에는 궁핍한 삶을 사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때문에 주거정책과 관련해서는 취약계층에게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닌 국민 대다수의 주거 안정성을 높인다는 관점으로 틀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속도감 있고 과감한 공공주택 확대로 누구나 살 수 있는 곳이 돼야 다양화, 품질향상이 가능하고 현재 노출되고 있는 부작용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는 "주택을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여기다 보니 관련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지고 경제 상황이나 정권에 따라 방향이 급격히 변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기본권인 인권으로서 주거를 보장한다는 생각으로 주거권에 대한 철학을 명확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고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와 시민 단체 관계자들은 전세 사기와 같은 사고 방지와 서민 주거 안정화를 위해 전세가율 하향 유도, 임대료 제한, 주택임대사업 시장 합리화, 임차인 정보 열위 해소 등의 의견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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