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배터리에 드리우는 일본의 그림자

입력 2023-07-0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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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배터리 산업을 보면 꼭 예전의 일본 같아요. 중국은 예전의 우리나라 같고요.”

최근 기자와 인터뷰하던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과의 배터리 산업 경쟁을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그의 말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과거 배터리 산업을 주도했던 일본의 모습이 떠오를 정도로 한국 배터리 산업이 잘 나가고 있다는 것. 동시에 중국과 한국에 밀려 경쟁력을 잃은 지금은 일본 배터리 산업의 모습처럼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담겼다.

1990년대 일본은 소니를 필두로 세계 배터리 시장을 주도했다. 세계 최초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상용화했다. 2015년에는 세계 자동차 리튬이온 전지 시장의 40%를 장악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은 내수 시장에 안주해 글로벌 확장의 시기를 놓쳤다. 그 사이 중국과 한국의 배터리 산업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며 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힘을 못 쓰는 신세가 됐다.

물론 한국은 과거 일본과는 다르다. 완성차 업체들과 잇따라 합작 공장을 짓는 등 빠르게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방심해서는 안 된다. 한국 배터리 산업이 장밋빛 미래만 있다고 할 수 없다.

가장 무서운 건 중국이다. 과거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해 ‘안방 호랑이’로 불렸던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국경을 넘어 약진하고 있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해외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에 점유율을 뺏기는 상황이다. 기술력도 나날이 발전 중이다. CATL을 비롯한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잇따라 차세대 배터리를 내놓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한국 배터리 업체의 텃밭이 될 것으로 전망됐던 북미 시장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중국 업체들은 IRA를 우회해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이에 미국이 전기차 공급망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 것이란 주장에 힘이 실린다. 게다가 일본까지 부활을 노리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를 비롯한 차세대 배터리를 앞세워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배터리 산업의 성패는 곧 우리나라 산업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배터리 산업이 잘 나가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가장 잘될 때를 경계해야 한다. 방심하면 자동차학과 교수의 말처럼 일본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한국 배터리 업계가 과거 일본 배터리의 실패를 교훈 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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