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1일, 넷리스트(Netlist, Inc.)가 미국에서 제기한 소송에서 삼성전자의 배상을 인정하는 배심원 평결이 나왔다. 넷리스트는 2000년 설립된 반도체 IT기업으로 고성능 메모리 장치 및 고성능 메모리 모듈을 개발하는 회사다. 삼성전자의 DDR4 LRDIMM 및 DDR5 LRDIMM 등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배심원 평결에서 넷리스트의 미국특허 10,949,339(바이트별로 버퍼링이 제어되는 메모리 모듈), 11,016,918 및 11,232,054(flash-dram 하이브리드 메모리 모듈), 그리고 8,787,060(메모리 패키지에서 드라이버 부하를 최적화하기 위한 방법과 장치) 및 9,318,160(최적화된 드라이버 부하를 갖는 메모리 패키지와 동작 방법)에 대해, 각각 삼성의 고의침해가 인정돼 약 3300만 달러, 1만4700만 달러 및 1만2200만 달러의 배상액(총 약 4000억 원)이 평결됐다.
글로벌기업의 특허분쟁에서 비현실적인 배상액이 평결되었다고 딱히 새로울 게 없을텐데, 필자에게 이 소식은 적지 않은 변화의 의미로 다가왔다. 넷리스트의 규모가 삼성과 비교도 되지 않는 중소업체인 데다 삼성의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LG반도체 임원 출신의 한인이 대표로 있는 회사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삼성을 상대로 싸워 이겼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아직 최종 판결이 남아있어 결과를 속단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미국 벤처기업이 빅테크 기업을 상대로 직접 특허소송을 제기하거나 소위 특허괴물이라 불리는 비제조 특허수익화 회사(NPE: Non-Practicing Entity)에 특허를 매각해 분쟁화되는 것은 필자에게 그냥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작은 기업이라도 기술력이 인정되고 관련 특허로 연구개발에 대한 수익화를 이루는 사업모델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기업에는 다소 요원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넷리스트도 대표가 한인일 뿐 나스닥에 상장한 ‘미국 회사’이기는 하다. 다만, 최근 국내 벤처기업이 미국으로 본사를 옮기는 소위 플립(flip)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고, 지난 6월 국내 팹리스 기업 뉴라텍의 와이파이 6 표준특허가 매각돼 글로벌기업 델(Dell)이 침해소송을 당하는 등, 우리나라 중소 하이테크기업이 규모나 마케팅이 아닌 기술력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추세는 확실히 감지되고 있다.
넷리스트의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특허를 통한 적극적인 수익화 사례가 우리 중소 하이테크기업들의 특허전략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특허창출 단계부터 정확한 전략으로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시장과 연구개발 상황에 부합되도록 특허전략에 대한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김세윤 아이피리본 대표/변리사